(산청 22) 649
지리산 에필로그












아! 지리산 천왕봉
천왕봉 등정을 위해 모여 간단히 체조를 하고 지리산의 산 그리메를 바라보며 맑고 상쾌한 산 공기를 원 없이 깊이 들이마신 후 우리도 천천히 천왕봉을 향해 발걸음을 시작했다. 입구 초입 10여 분간의 등산로가 제법 힘이 들 정도로 가팔랐다. 한 대원이 엄청 빡 세네 라고 한마디 던지자 모두들 와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말하고 있는 그의 표정이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이 묻어났기 때문이다. 일행 들 모두 식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파른 등산로를 오르게 되니 내심 힘든 것을 참아 내느라 전전긍긍했는데 누군가가 그 마음을 대변해 준 것도 한몫을 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관계라는 것이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 인 듯싶었다. 가파른 계단 길을 벗어나자 사방이 확 터진 능선길이 나타났다. 운무로 조망은 감상 할 수 없어 아쉬웠다. 제석봉 안내 푯말과 작은 전망대를 지나 천왕봉까지 이르는 길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1박을 한 관계로 전혀 힘들지 않게 산책하는 기분으로 올랐다. 지리산을 제대로 느끼고 알려면 1박을 하는 것을 추천 드리고 싶다.
당일로 얼마든지 다녀올 수 있지만 시간에 쫒기고 체력 안배에 바짝 신경을 쓰느라 지리산의 진면목을 제대로 느끼고 감상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기준일 뿐이다. 백무동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도 많았다. 당일 코스로 천왕봉을 위해 전국각지에서 몰려오고 있는 듯했다. 젊은 사람들도 눈에 많이 들어왔다. 들머리로 백무동과 중산리를 가장 선호하는 지 대부분 이 두 코스로 올라오고 있는 듯했다.
천왕봉 가는 길은 20여 년 전의 기억이 부분적으로 생각은 났으나 대부분은 생소했다. 기억의 한계라는 것을 절감했지만 일부 등산로는 조금 변경되지 않았나 싶었다. 그 당시 없었던 전망대와 안내 푯말 등을 만들면서 조금씩 달라지지 않았나 했다. 9부 능선에서 잠시 깔딱 고개가 있었지만 그다지 힘은 들지 않았다. 마지막 용틀임을 내어 천왕봉에 서자 운무가 자욱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짙은 운무로 인해 조망을 감상할 수 없었지만 20여년 만에 오른 천왕봉 정상 석을 보자 감개무량했다. 대한민국의 기상이 백두산에서 시작 백두대간을 타고 이곳 천왕봉에서 비로소 만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긍심이 가슴 저 밑에서 솟구쳤다.
지리산 에필로그
천왕봉 정상석은 예전모습 그대로였다. 중산리 방면에서 올라오는 코스도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반가웠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에 일행들 독사진과 단체사진을 잽싸게 찍었다. 오늘 천왕봉 정상에 처음 선 두 친구의 표정이 유난히 밝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자가 누리는 여유를 만면에 보였다. 어렵고 힘든 지리산 산행에 함께 동참해 준 일행들이 고마웠다. 나 또한 함께한 일행들 덕분에 어렵지 않게 올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등정으로 천왕봉에 3번 오른 셈이 되었다. 평생 한 번 오르기도 싶지 않은 곳을 세 번이나 올랐다고 하면 큰 자연에 대한 도리는 하지 않았나 싶었다. 정상에서 더 오래 머무르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20여분 정도만 머무른 후 하산을 시작했다. 20여분 만에 짙은 운무가 사라지면 360도로 터지는 근사한 조망을 볼 수 있게 되기를 마음속으로 간절히 원했지만 아쉬웠다. 삼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제대로 된 지리산 조망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하는 말이 사실인 듯했다.
하산하는 길은 신바람이 났다. 통천 문을 지나고 다시 제석봉 부근에 오자 날이 개었다. 날이 개자 지리산의 산세가 윤곽을 드러냈다. 안온하게 느껴지는 지리산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산 그리메를 보는 행복감이 좀 더 마음속으로 깊이 다가왔다. 산 능선이 3,4겹으로 겹쳐 보이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기에 마음껏 조망을 즐기고 대한민국이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속으로 간구했다.
장터목에 다시 도착하자 언제 어디서들 왔는지 사람들로 가득했다. 개인적으로 온 사람과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뒤섞여 있었다. 식탁으로 사용하는 대피소 주변의 식탁에 빈 공간이 없었다. 화창한 날씨가 가을의 절정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대변하고 있었다. 장터목 대피소를 떠나는 아쉬움을 달래면서 잠시 동안 지리산의 탁 트인 조망을 감상했다. 화창한 날씨와 신선한 공기를 머금은 바람이 얼굴을 감싸주며 조만간 다시 오라고 귓속말로 이야기 하는 듯했다.
어제 산행 중 비 때문에 잠시 고통스러웠던 등산길이 오늘은 청명한 날씨로 인해 천국으로 향하는 길로 변해 있었다. 올라오다 보지 못한 풍경들을 감상하며 하산하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 되었으나 지리산을 속속들이 눈에 넣고 가야겠다는 생각만큼은 양보 할 수 없었다. 올랐던 들머리에 다시 서자 1박2일간 지리산에서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짧은 순간이지만 큰일을 해낸 것 같은 뿌듯한 감정이 올라왔다. 등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 이것이 아닌가 싶었다.
산행을 마친 후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곳에 있는 목욕탕에 들러 1박하며 하지 못했던 샤워를 하고나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 되었다. 목욕탕 주인께 여쭈어 소개받은 춘산식당(산청)에서 맛깔난 식사로 또 한 번 즐거운 마무리 시간을 가졌다. 춘산식당은 산청에 오시면 꼭 들러보시길 강추드리고 싶을 정도로 가성비가 좋았고 노루 궁뎅이 버섯을 기름장에 찍어 먹는 맛은 기가 막혔다. 송이버섯을 기름장에 찍어 먹는 것보다 한 수 위였다. 주인장의 넉넉한 인심은 금상첨화였음을 알려 드리며 지리산에서의 1박 2일을 마무리 한다.
(2024.10)
뭔가를 할 때 배운 다음에 하는 습관을 버리고 바로 하는 것이 하늘의 법칙이다
(이승헌, 오늘을 위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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