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4) 659
괴시(槐市)리 마을 1



영덕 괴시리 마을에 들어섰을 때, 고요히 잠든 세월의 결을 느꼈다 돌담길은 햇살을 머금고 부드럽게 빛났고, 오래된 기와집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묵묵히 서 있었다 집들에는 흙과 나무의 무게뿐만 아니라, 오랜 삶과 사유의 향기가 배어 있는 듯했다. 돌담 너머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 저 멀리서 스쳐오는 바다내음은 이 마을이 단순한 문화유적이 아니라 삶과 학문의 전통이 이어지는 살아 있는 터전임을 일깨워주었다.
나는 기와집 처마 밑 그늘 속에서, 조용히 흐르는 시간 속에 귀를 기울였다 그 고요는 적막이 아니라 축적된 세월과 학문의 숨결이 빚어낸 고요였다. 오래된 기와에 내려앉은 햇살, 장독대 위에 스며든 바람, 그리고 집집마다 이어내려온 선비 정신이 내 마음을 맑게 하고 겸허하게 했다 돌담길을 따라 걸으며 사라져가는 것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그것은 단순한 향수가 아닌, 지나간 세월이 여전히 현재를 비추는 살아 있는 등불로 다가왔다
목은 이색(1328~1396년)의 탄생지이자 그의 외가로 더 알려진 괴시리 마을을 처음 찾았다. 영덕에도 경주 양동마을과 비슷한 역사를 지닌 마을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알았다. 목은 탄생지와 사후 현재 그가 묻혀있는 서천과의 거리가 멀었다. 고려 말, 조선 초의 대학자로 명성을 떨쳤던 목은 이색의 고향이 이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오늘 이곳을 방문한 의의가 있지 않나 싶었다. 동해안 3대 평야의 하나로 부르는 영해평야에 자리 잡은 괴시리 마을에 대한 전반적인 느낌은 참으로 안온하고 푸근했다.
남부 동해안 인적 드문 곳에 400 여년의 역사를 지닌 집들이 30 호 정도 옹기종기 모여 있는 풍광이 고즈넉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일부 집들은 안 마당까지 공개하고 있어 둘러보기 좋았다. 고택을 지켜내기 위한 고육책으로 카페와 스테이를 겸한 집들도 있어 괴시리 마을은 당분간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할 듯했다. 경주 양동마을 만큼의 큰 규모도 아니고 왕래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아 이곳 역시 곧 소멸 위기에 봉착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들었지만 살아남을 희망이 생겼다.
동해안 해파랑 길과 영덕 블루로드 일부구간에 이곳이 포함되어 있어 수많은 도보 순례자들에게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방문 할 당시(6월) 뜨거운 뙤약볕을 마다하지 않는 해파랑 길 순례자들이 자주 보였고 그들이 괴시리 마을에 흥미를 가지고 둘러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순례자들 중 일부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가옥에 들러 차 한 잔으로 피곤함을 풀고 잠시 쉬고 있는 모습에서 이곳이 도보 순례자들에게 기운을 재충전하고 가는 쉼터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사한 고택 마당 정원과 한옥 대청마루가 있는 살림집을 겸하고 있는 카페에서 시원한 차 혹은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어가기엔 이만한 장소가 없어 보였다. 우리도 작은 방이 딸린 대청마루에서 시원한 차 한 잔 마시며 운 좋게 주인과 마을 역사에 대해서 담소 나누고 좋은 정보를 얻는 유익함이 있었다. 살림집임에도 내부를 두루 구경해 볼 수 있어 재미가 있었다. 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집이지만 아직도 건축물 상태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잠시 체면을 무릅쓰고 대청마루에 잠시 들어 누워 보았다. 얼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는 살랑바람이 시원했다. 작은 행위가 준 행복이 컸다. 세상 남부러울 게 없었다.
(2024.6)
운명은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말과 생각의 힘으로 스스로 만들어가는 부분도 존재한다 (정희도 잘될 운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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