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11) 638
정취관음보살상 – 영혼의 귀로(歸路)에 서서




산청의 깊은 품속, 정취암을 향해 걷노라면 우선 그 입구에 서 있는 사적비 앞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돌에 새겨진 그 오래된 문자는 마치 이곳의 숨결처럼 조용히 말을 건다. 사람은 어떤 사물을 보기 전에, 먼저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마음이 준비되지 않으면 눈은 본다 해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
정취암에는 국보도 없고, 보물도 없다. 하지만 언젠가 그것을 보물이라 부르게 될 날이 오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인간의 시간은 짧지만, 진리는 오랜 침묵 속에 피어난다. 의상대사가 신라 신문왕 6년(686년)에 창건했다고 한다. 천삼백 년의 세월은 짧지 않다. 그만큼 이곳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이 서려 있다. 절이 다 불타고 사라졌어도, 그 자리에 다시 전각이 세워지는 일은 마치 자연의 순환처럼 필연적이다. 이는 단순한 복원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것이다.
이 땅은 그런 운명을 타고났으리라. 강인함이 아닌, 조용하고도 끈질긴 생명력. 가히 “정취(淨趣)”라는 이름이 어울릴 만하다.
정취암에 온 이라면 반드시 원통보전을 놓쳐서는 안된다. 그곳의 본존불인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마치 인간의 마음을 비추는 거울처럼, 그 얼굴에는 고요한 자비가 깃들어 있다. 일반 관음보살상과 쌍둥이 같은 모습이나 결코 같지 않은, 정취관음보살상은 우리나라에서 오직 이곳에만 존재한다. 세상의 괴로움을 조용히 들어주는 듯한 그 모습은, 관세음보살과 닮았으나 다른 길을 걷는다. 고통을 제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끌어안고 해탈로 이끄는 보살. ‘정취보살’이라는 이름은 내게도 이곳에 와서야 처음으로 알게된 언어였다.
산다는 일은 끊임없는 무지를 마주하는 일이다. 나 또한 여러 사찰을 다녀보았으나, 이처럼 새로운 사실을 만날 때마다 불교의 깊이가 느껴진다. 그것은 외적인 장엄함이 아니라, 스며드는 지혜이며 조용한 깨달음이다.
원통보전 앞마당에는 짙은 분홍의 꽃이 피어 있다. 기왓장 담장을 배경으로 핀 그 꽃은, 마치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드러낸다. 꽃과 산, 그리고 저 멀리 들판이 맞물려 이루는 풍경은, 무언가를 내려놓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가만히 품어준다. 인간의 마음도 이처럼 어루만질 수 있다면, 세상은 조금 더 조용히 숨 쉴 수 있을 것이다.
정취암에서 멀지 않은 정수산 율곡사에도 잠시 머물러보시라. 원효대사가 직접 창건하고 목침을 짰다 전해지는 대웅전 건축설화, 새신바위에 얽힌 미완성 단청설화까지. 세월은 모든것을 잊게 하나, 자연과 사람의 만남은 결국 다시 기록되고 기억된다.
이 모든 길 위에서, 나는 한 걸음씩 내면을 향해 걷는다. 어느덧 속세의 소리는 멀어지고, 남은 것은 바람과 나, 그리고 고요한 침묵뿐이다.
(2024.8)
철학은 새로운 렌즈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게 도와주기에 가치가 있다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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