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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13) 640 정취보살좌상 후면 탱화와 산신각

(산청 13)  640

 

정취보살좌상 후면 탱화와 산신각

 

원통보전의 정취보살좌상도 예술적 가치가 높아 보였지만 보살좌상 후면의 탱화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인물의 비례가 정교했고 색감 또한 탁월했다.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주요 인물을 대칭으로 배치해 안정감이 느껴졌고 세심한 선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것들을 정밀하게 묘사했다. 하나의 중심, 그리고 균형. 그것은 회화이기 이전에 일종의 정신적 구도처럼 여겨졌다. 색은 깊고 붉었고, 선은 지혜로웠다. 여백이 없는 것이 아쉽기는 했으나, 어쩌면 이 완전한 채움이야말로 마음의 허공을 채우기 위한 배려였는지도 모른다.

 

주지 수완 스님이 직접 쓴 정취암 일출이라는 시가 원통보전 전면 아래 기왓장 위에 덧댄 백지에 씌어있었다. 이곳 일출의 아름다움을 수행자의 입장에서 멋들어지게 표현했다. 그의 시는 삶과 수행의 접점에서 이끌어낸 새벽의 영감이었다. 시 한 줄 한 줄에서 바람을 느꼈고, 침묵을 보았으며, 어떤 낮고 고요한 울림이 들려왔다. 사찰 곳곳엔 수행자의 문장들이 살아 있었다. 문장은 늘 깨어 있음으로 향하는 이정표와 같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잊고 다시 찾기 위해, 글을 쓰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곳에 오시면 원통보전 뒷편에 있는 산신각도 유심히 살펴보시길 바란다. 보통 산신각에는 탱화로 된 산신상이 있는데 이곳에는 돌로 된 산신상이 있다. 주지스님 말에 따르면, 이 돌 산신은 경기도에 사는 어느 석공이 꿈에서 본 그대로 조각해낸 것이라 했다. 꿈은 종종 현실보다 더 또렷해 운명이 그를 이 산사로 이끈 것이다. 그가 정취암을 발견한 순간, 이곳이 꿈속의 사찰임을 확신했다. 돌은 묵직했고, 그 안에는 또 하나의 신화가 고요히 웅크리고 있었다.

 

정취암에서 가장 기가 센 곳이 산신각이다. 그 곳 벽에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고, 그 유리창 너머로 돌로 만든 산신상이 보이는 구조여서 특이했다. 유리창은 경계를 상징했지만, 그 투명한 장막 너머로 보이는 돌 산신은 경계를 넘나들며 나를 응시했다. 나는 단군을, 혹은 공자를 떠올렸다. 인간의 형상 안에 깃든 신성 그 뒤에는 오래된 산신탱화가 있었다. 세월의 먼지를 머금은 색은 오히려 깊은 생명력을 품고 있었다. 산신각은 단지 산신을 모신 공간이 아니라, 오래된 토속적 믿음과 불교의 관용이 만난 접점이라고 느껴졌다. 형식을 넘은 수용 그리고 전통 너머의 직관을 통해 정취암은 인간이 길을 잃지 않도록 마음속에 또 하나의 등불을 밝혀 두고 있는 듯했다.

 

(2024.8)

 

재능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해 쓰라고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

(정혜성, 가치있게 나이 드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