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12) 639
수완 스님



세월이 겹겹이 쌓인 산중의 절벽 위에, 작은 암자가 햇살을 가만히 품고 있었다. 바위 줄기를 타고 흐르는 적막한 기운은 오래된 이야기들의 호흡 같았고, 나뭇잎들조차 오랜 사연을 기억하는 듯 속삭였다. 오래된 사찰에는 설화든 역사든 수많은 스토리가 무궁무진하게 내재되어 있다. 그 속에 담긴 사연은 많지만 결국 주인공은 사람이 아닐까 싶다. 사람에게서 비롯된 수많은 이야기들이 모여 역사가 되고 삶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취암은 과거에 대성산의 바위 절벽 줄기를 따라 많은 암자와 수행처가 산재해 있던 큰 사찰이었다.
전부 합치면 100여 칸의 규모나 될 정도로 큰 규모였다고 한다. 큰 건축물이 들어서기에는 공간의 제약이 있기에 작은 암자들이 여러 군데에 산재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원통보전에 모셔진 정취보살상은 1714년에 다시 조성된 보살상이고 1832년 화재로 암자들이 거의 소실되고 현재 있는 이곳의 절벽 정상 부위에만 복원 불사가 이루어졌다.
정취암은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로 지금의 규모로 불사가 이루어지기까지 주지인 수완 스님의 원력이 컸다. 1995년부터 20년 동안 온갖 고생을 하면서 불사를 하며 새로 도로를 내고 법당 앞마당을 흙으로 메워 터를 넓히고 전각을 지었다. 20여 년간을 불사공덕에 온 힘을 쏟아 부은 수완 스님의 무모함(?)이 기적을 일구었다. 사람이 마음을 내어 오직 한 생각, 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면 삼라만상이 합심해서 돕는다는 말을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현장이 이곳이 아닐까 했다.
정면3칸 측면 2칸의 원통보전이 팔작지붕으로 인해 날렵한 모습으로 정취암의 주 건축물임을 분명히 했다. 이중처마구조로 인해 작은 건축물이지만 귀티가 느껴졌다. 원통보전 글자체가 도드라졌다. 금빛 글자체가 편액을 꽉 채우고 있었다. 정취암 본존불인 원통보전 내의 정취관음보살좌상의 크기는 50cm 크기로 아담했다. 일반사찰의 대웅전에 모시는 석가모니불과는 대비가 되었고 1714년(숙종40년)에 만든 것임에도 어제 만든 듯 세월의 더께가 느껴지지 않았다. 시간의 먼지가 붙지 않은 듯, 조선 후기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그 조형물은,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앉아 조용히 사유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이따금 우리는 삶을 거대한 성취로만 이해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산중의 암자는 말해 준다—진정한 삶은 외부가 아니라 가슴 깊은 곳 소리 없는 부름에 귀 기울이는 데서 비롯된다고. 정취암은 그저 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진심이 산과 하나 되어 피워낸 하나의 시이며, 하나의 철학이며, 무엇보다도 살아 있는 마음의 풍경이었다.
(2024.8)
철학은 어떻게 하면 우리의 삶을 최대한 살아내느냐에 관한 것이다
(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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