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25) 656
풍영루(風詠樓)




남계 서원 정문 역할을 하는 풍영루가 당당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직지붕으로 한층 멋을 냈다. 풍영루 누각에 서면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계천(남강)이 보이고 우측 너머로 정여창의 생가인 개평마을이 아스라했다. 좌측 너머로는 지리산의 실루엣이 마음을 평화롭게 했다. 산 많은 지형의 함양이 순간적으로 들판이 잘 발달된 고장으로 착각 하게끔 만드는 풍광에 돌연 놀라게 된다. 제법 너른 들판이 펼쳐진 모습을 풍영루에서 바라보는 맛이 좋았다. 가만히 서 있으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순간적으로 누각 바닥에 누워 단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무렵 노을이 질 때 이곳에 오르면 남계천(남강)을 앞에 두고 멀리 지리산은 환상의 자태를 보여 줄 듯했다.
풍영루(風詠樓)의 한자가 멋들어졌다. “바람을 읊는 누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한자가 아니던가? 시원한 바람이 드나드는 곳에서 풍광을 즐기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기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했다. 풍영루라는 이름에는 단순히 경치를 감상하는 것을 넘어, 바람을 느끼며 시를 짓고, 학문과 예술을 서로 논하며 유생들 간 심층적인 교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담긴 듯했다. 건축물에 이름을 짓는 것에도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선비가 지녀야 할 정신을 담고자 했던 그 당시 선조들의 깊은 마음이 헤아려졌다.
조선 시대 서원의 전형적인 형식을 처음 제시한 서원이라는 점에서 건축물의 배치와 형태 등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전반적으로 안동의 병산 서원 보다는 규모가 축소 된 형식으로 보였다. 건축물들이 그리 크지 않아 많은 유생들이 함께 공부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 당시 큰 고장마다 서원이 존재했고 지방 소재의 서원이기에 유생이 많은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유추 되었다.
유생들의 숙소였던 동재, 서재의 규모가 작은 것도 그 점을 미루어 짐작하게 했다. 숙소에 비해 장서를 보관했던 장경각의 크기가 컸다. 사당을 강학당 후면 높은 곳에 배치하여 전반적으로 건축물에 위계를 두었다. 현재의 시점으로 바라보면 규모도 작고 보잘 것 없는 모양새이지만 각 건축물에 걸린 편액의 글자가 도드라졌다. 선비 교육은 어떻게 시켜야 하는 지 더불어 선비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2025.7)
정성스럽게 숨을 쉬다 보면 우리는 호흡의 더 깊은 의미, 즉 생명의 참 모습을 알 수 있다
(이승헌, 타오 나를 찾아가는 깨달음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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