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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8) 437 칠백의총과 종용사

(금산 8)  437

 

칠백의총과 종용사

 

의총이란 연고가 없는 사람의 주검을 거두어 묻은 무덤또는 의사의 무덤을 말하는데 임진왜란 관련 의총으로는 칠백의총 외 부산의 임진동래의총과 남원의 만인의총이 있다. 동래의총은 동래부사 송상현과 동래성을 지키다 순절한 민,,군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무덤이고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선조 30)때 남원성을 지키다 순절한 민,,1만 여명의 유해를 거두어 모신 무덤이다.(기념관 자료 참조) 그동안 무시하다시피 지나쳤던 역사적 사실을 되새기며 많은 반성을 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고 강조한 처질의 말이 다시금 금과옥조처럼 마음속에 새겨졌다. 일상으로 돌아가면 잊고 살지만 한 번 보고 새겼던 내용은 절대로 잊히지 않는 법이다. 어려울 때마다 그 당시 선조들의 희생정신을 떠올려본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어려움도 아니지 않을까 싶다.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칠백의총 기념관 배포 자료 참조)

 

칠백의총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아산 현충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대체로 안온했고 편안했다. 사후에라도 고즈넉하고 안온한 곳에 묻힌 그 분들의 넋을 위로했다. 정문 들어서자마자 우측에 있는 연못이 애잔했다. 돌아가신 분들의 눈물이 연못으로 승화된 듯했다.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그 당시의 아픔을 위로해주고 어루만져주고 있는 듯했다. 종용사 사당에 모셔진 금산 전투(눈벌,연곤평,횡당촌)에서 돌아가신 의병, 승병들의 이름들이 빼곡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새롭게 다가왔다.

 

종용사(從容祠)대의에 따라 의연하게 순절하신 분들을 모신 사당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순절하신 선조들의 사당이기에 이름 또한 허투루 작명하지 않은 듯했다. 잠시 묵념을 통해 그 분들의 넋을 위로했다. 제일 위쪽에 있는 칠백의총의 반원형 봉분이 도드라졌다. 조선 왕릉이상으로 관리되고 있는 듯 봉분이 가지런했고 봉분의 잔디에 흠집이 없었다. 무덤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칠백의총은 그 존재만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애국심을 불러일으키고 국난극복의 정신을 되새기게 함으로써 미래를 대비해야 하는 자세를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매우 유익했다. “생명의 고향 미래의 땅금산의 이미지가 비로소 가슴속으로 다가왔다. 칠백의총을 떠나며 다시 한 번 임진왜란으로 숨져간 모든 분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난이 생기지 않으려면 어떠한 자세로 나라를 운영하고 준비해야 하는지를 가슴속에 새롭게 새겼다.

 

 

(2021.10)

 

뜻을 세우지 않으면 근심이 끊이지 않는다(신창호, 함양과 체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