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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7) 436 칠백의총과 임진왜란

(금산 7) 435

 

칠백의총과 임진왜란

 

임진왜란은 발발 후(15924, 선조 25) 20일 만에 서울이 함락되고 2개월 후 평양성까지 함락되는 바람에 선조가 의주까지 쫒겨간 이후 국경을 넘어 중국으로 피신하려고 할 정도로 속전속결로 전쟁에서 패하고 나라가 망할 직전까지 치달았던 엄청난 전쟁이다. 15만의 대군으로 밀어닥친 왜군을 대항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던 조선의 관군(육군)은 속절없이 무너졌지만 국가가 위기에 봉착하자 분연히 일어난 의병, 승군들과 진주대첩을 이뤄낸 김시민 장군 같은 충정으로 똘똘 뭉친 탁월한 장군들 덕분에 속전속결로 승리를 앞세우던 왜군들의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다에서는 이순신장군이 임진왜란 발발 전부터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철저히 준비하고 지혜롭게 대응하였기에 2323승이라는 세계 해전 상 전무후무한 위업을 이루어냈고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나라를 지켜낸 일등공신으로 오늘날에도 추앙받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느껴보면 결코 인간의 힘으로 해내기에는 참으로 이해가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을까 싶다. 나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탁월한 인물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나라의 위기에 눈감지 않고 분연히 일어난 의병과 승병들의 충정심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새기며 선조들의 희생정신에 깊은 감사와 애도를 보내 드렸다.

 

왜군들이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의병과 승군까지 한 몸을 이루어 결사항전으로 대항하였기에 임진왜란은 7년을 끌었고 결국 왜군들로 하여금 5만 여명에 가까운 목숨을 잃고 퇴각하도록 만들었지만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사에 잊을 수 없는 전쟁이자 역사적 대사건이었다. 임진왜란 7년을 거치며 뼈저리게 느끼고 경험했던 것들을 제대로 교훈으로 삼고 준비하지 않아 병자호란의 아픔을 또 겪었던 아픈 역사는 우리들 유전자 속에 아로새겨져 불굴의 도전 정신으로 승화되고 어떤 위기가 와도 이겨 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굳어졌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금산은 영남과 호남을 잇는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초기 2개월(1592.6.22.-8.27)에 걸쳐 있었던 연곤평 전투, 권율 장군의 배티재 전투, 고경명장군의 눈벌 전투를 비롯한 6개의 전투로 인해 왜군의 호남 내륙 진출을 막을 수 있었기에 이순신 장군의 혁혁한 업적도 빛을 발했다고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칠백의총을 둘러보며 그동안 어렴풋하게 알았던 역사적 사실을 명확하게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라고 했다. 처칠이 한 말이지만 오늘날 우리에게도 꼭 들어맞는 말이지 않을까 싶었다.

(2021.10)

 

 

자연과 자주 만나라. 위대한 작가들과 위대한 사상가들과 위대한 예술가들과 위대한 건축가들의 공통점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고 자신의 내면과 만났다는 것이다

(이지성, 생각하는 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