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10) 555
난계 국악 박물관 4
한 왕조가 시작되어 사라지기 전까지는 수많은 인재가 명멸하는 법이다. 난계 박연은 세종대왕이라는 걸출한 성군을 만나 그가 배우고 익힌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세종대왕이 그를 관습도감 제조로 임명하여 음악에 전념하도록 한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고 느껴졌다. 그 당시 음악에 대해 제대로 정리된 것이 없어 이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그 당시의 모든 음악을 집대성한 악서를 편찬함과 동시에 석경을 비롯한 편종,노고,건고,축,대고 ,영고,훈 등의 아악기를 옛 제도에 맞춰 제작 혹은 개조하였다고 한다.
더불어 조회악 및 회례아악의 창제, 제향아악, 특히 종묘악의 정정 등 조선음악의 기반을 놓았고 또한 아악의 정리로 큰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각각의 용어와 구체적인 내용은 많은 공부를 해야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듯했다. 깊게 들어가면 전문분야이기에 이 정도만 알아두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영동을 국악의 본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은 바로 난계 박연이란 인물이 그 중심에 있다 하겠다. 이를 기념하고 난계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서 매년 가을이면 영동군 주관으로 난계국악축제가 전국축제 형태로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난계는 79세까지 관직에서 근무하였다고 하는데 건강관리 또한 열심히 했겠지만 그 당시 평균 수명이 60이 넘지 않았음에도 그 이상으로 장수한 것은 일에 대한 열정과 일에 대한 애정이 지극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그는 세조 2년(1456)에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와 살다가 세조 4년(1458.3.23.)에 81세를 일기로 타계 했다고 한다. 난계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이유는 삼남 계우가 단종복위 사건에 연루되어서인데 이로인해 그 또한 화를 크게 당할 뻔 했으나, 세명의 임금를 모신 공으로 벼슬만 파면되어 낙향했다고 한다.
그가 쌓은 업적은 물론이고 한 평생 청렴하게 살아온 것이 큰 화를 면하게 했다고 보여졌다. 난계 국악 박물관 가까이에 있는 그의 생가를 가보면 그의 청렴한 삶을 짐작해 볼 수 있기에 그의 생가와 국악 박물관 이웃해 있는 그의 묘소 그리고 사당인 난계사도 함께 둘러보시길 권해 드린다. 난계 박연의 삶을 돌아보면서 천재 역시 성군을 만나야 재능을 펼칠 수 있고 삿된 마음없이 일에 전념 할 때 하늘도 돕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전통 국악에 숨겨진 놀라운 음악적 감수성이 현대 음악과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접목되어 새로운 장르가 탄생되기를 기원해 보고 우리 음악에도 관심을 갖는 국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도 속으로 간구했다. 사람의 삶과 아주 밀접한 음악은 한 나라의 정체성과 깊게 연결되어 있으며 국민 정서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은 누구나 주지하는 사실임에도 우리 전통음악인 국악을 그동안 등한시 하고 관심을 두지 못했음을 반성해 본다. 2023년을 마감하는 12월 말 영동의 하늘이 오늘따라 유난히 파랗게 느껴졌다.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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