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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9) 554 난계 국악 박물관 3

(영동 9)   554

 

난계 국악 박물관 3

 

1층 전시공간을 둘러보고는 2층도 꼭 올라가 보시길 권유 드린다. 나라마다 개성이 느껴지는 세계 여러 나라의 민속악기가 전시되어 있어 우리 국악기와 비교해보는 즐거움이 있다. 학창시설 궁상각치우로 대변되는 국악에 대해 짤막하게 배운 이후로는 건성으로만 지나쳤던 것들을 상세하게 정리된 내용으로 접하게 되어 우리 것에 대한 소중함과 더불어 우리 국악을 통해 서양 음악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우리국악과 현대음악 그리고 서양 클래식과의 다양한 접목을 통하여 새로운 음악 장르를 도모 해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만간 창의적인 생각을 지닌 누군가가 국악을 접목한 현대음악의 새로운 장르를 멋지게 열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일었다. 또한 국악은 국악대로 계속해서 현대인의 삶에 맞추어 지속적인 변주를 통해 발전을 도모해야하고 그런 발전 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법이다. 전통의 계승은 궁극적으로는 발전에 있고 나아감에 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기대는 것이 아닌 지금 현재 살고 있는 현대인의 취향에 발맞추어 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국악을 제대로 알려면 국악의 아버지로 부르는 난계 박연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그의 삶에 대해 간단히 개관해 본다. 국악의 역사에 있어 난계 박연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다. 그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접하고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물론 그가 가장 활발하게 활약했던 시기에 그를 국악을 총괄하는 관습도감 제조로 임명한 세종대왕의 안목과 혜안이 없었다면 우리 국악이라는 것도 아주 미미한 존재로 자리 매김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세종의 역할도 무척 컸다.

 

난계 박연은 고려 우왕 4(1378.8.20.) 영동군 심천면 고당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밀양이고 호는 난계, 시호는 문헌공이다. 140528세에 생원이 되었고 34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교리를 거쳐 사간원 정언, 사헌부 지평, 세자시강원 문학을 지냈고 예문관 대제학과 이조판서를 역임한 후 관습도감 제조로 있는 동안에 우리 국악의 기틀을 잡았다. 작곡, 연주 뿐만 아니라 악기의 제작, 음악 이론의 연구와 조율 그리고 궁정 음악의 정립과 혁신 등 음악에 관계되는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고 했다. 한마디로 뛰어난 문신이면서도 음악예술인 이었다.

 

이런 탁월한 업적으로 인해 고구려의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악성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그 당시 사정으로 볼 때 예문관 대제학과 이조판서까지 역임한 문신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었다는 것은 사실 놀라운이 아닐 수 없다. 태생적으로 타고난 그의 음악적 재질과 어릴 적부터 음악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사명감으로 공부를 하며 해박한 지식을 터득했기에 가능한 일이지 않나 싶었다.

 

(202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