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11 ) 602
일두(一蠹) 정여창(鄭汝昌)
함양 개평마을에 와서 일두 정여창 고택을 답사하고 나니 더더욱 그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가 솟구쳤다. 특히 일두 홍보관 문화 해설사의 1시간에 가까운 설명을 듣고는 잊혀진 인물이 새롭게 부상되고 있음을 느꼈다. 무오사화로 인해 그가 저술한 문집과 그와 관련된 상당부분의 기록들이 불타거나 없어졌기에 지금껏 사학자들에게는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한 듯했다. 2004년 그의 사후 500년을 계기로 정여창과 더불어 동시대에 활동하였고 친한 지기였던 한훤당 김굉필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고 한다.
일두 홍보관에 전시된 내용과 그에 대해 기술된 서적과 글들을 통해 그의 생애를 간단히 개관해 보고자 한다. 두루 여러 기록과 글들을 살펴보았지만 주목할 만한 내용이 자세하지 않고 양도 많지 않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었음을 양해 부탁드린다. 정여창(鄭汝昌, 1450-1504년)은 조선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이다. 함길도 병마우후 벼슬을 지낸 정육을(鄭六乙)과, 목사 최효손(崔孝孫)의 딸인 어머니 경주 최씨의 아들로 함양 개평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정육을은 1467년(세조 13년) 이시애의 난 당시 병마우후(兵馬虞候)로 출전하여 나라를 위해 결사 항전하던 중 전사했다. 사후 적개원종공신(敵愾原從功臣)의 녹훈(錄勳)을 받고 한성부좌윤에 추증되었다. 정여창 선생은 8세 때 의주판관(義州判官)으로 부임한 아버지를 따라 수행하는 중 명나라 사신이었던 장녕(張寧)이 그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집안을 크게 일으킬 인물이라 칭송하였다고 한다.
이시애의 난 으로 아버지가 전사하자 1달간 전장 터를 떠돌며 시신을 찾아서 장례를 치르자 세조가 이를 가상히 여겨 그에게 아버지의 직책을 제수하였으나 고사하였다고 한다. 그의 효심이 어떠하였는지를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18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혼자서 학문을 익히다가, 조선시대 사림(士林)의 조종(祖宗)으로 추앙받는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이 함양군수로 내려오자 김굉필과 함께 그의 제자가 되어 3년간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성리학을 연구하여 경명수행(經明修行)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경명수행(經明修行)이란 경험과 지혜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을 닦고 행한다는 뜻으로 자신이 배우고 경험한 것과 그것을 통해 얻은 지혜를 제대로 이해하여 두루 활용 할 수 있는 능력을 터득해 이를 적극 행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는 선비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질이자 덕목이라고 생각했다. 문장은 단순했지만 속에 담긴 뜻은 심오했다.
(20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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