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11) 491
무령왕릉과 왕릉원 1
공주에 오면 반드시 들러야 할 곳 중의 하나가 무령왕릉이다. 백제에 대한 지식이 짧은 사람도 무령왕릉을 보고나면 백제를 보는 시각이 달라진다. 고대국가의 하나였던 백제의 역사는 자그만치 거의 7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한 왕조가 7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공주박물관을 둘러보고 무령왕에 대한 지식을 피상적으로나마 머리 속에 넣고 예전에 송산리 고분군으로 불리었던 무령왕릉과 왕릉원을 찾았다. 아주 크지 않은 규모의 왕릉원은 작은 동산을 이룬채 공주 도심을 차분히 내려 보는 언덕에 자리 잡았다. 신라 대릉원은 평지에 조성하였는데 백제 왕릉원은 제법 높이가 느껴지는 구릉지에 자리 잡았다.
왕릉원은 무령왕릉을 비롯하여 백제시대의 왕과 왕족의 무덤으로 총 7개의 무덤으로 조성되어 있다. 특이한 것은 1-5호 무덤은 굴 모양의 돌로 만든 석실묘이고 6호 무덤과 무령왕릉만 벽돌로 만든 무덤인데 그 당시 선진문명을 지닌 중국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무령왕릉의 왕과 왕비의 관은 일본에서 나는 금송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일본국과도 교류가 잦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무덤에 남아 있는 부장품으로 많은 것을 유추하고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을 보면 도굴 되지 않은 문화재의 존재가 매우 중요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무령왕릉이 훼손 없이 발견될 당시 고고학계와 역사학계에서는 환호성을 칠 정도로 대단한 사건이었다고 한다. 역사에 대해 무지할 정도로 관심이 없는 대다수의 국민들에겐 그저 남의 관심사 일 뿐이고 지금도 비슷한 양태가 계속되고 있음에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역사를 무시하는 민족은 나아갈 수 없고 정체성도 희미해져 나중에는 자신의 뿌리도 모른 채 생을 마감하는 어리석음을 범 할 수도 있다. 자신과 자기 나라에 대한 정체성을 제대로 알고 살아가는 민족과 아닌 민족의 차이는 크다. 이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왕릉원은 풍수지리도 고려하였겠지만 왕성이 있었던 공산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조성하여 수시로 찾아 예를 갖출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조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500년 도읍지인 한성을 버리고 웅진으로 천도할 수밖에 없었던 쓰라린 아픔은 왕권 강화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만천하에 알리기 위해서라도 돌아가신 왕과 왕족들에 대한 예를 극진히 해야만 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신라 대릉원에 비해 규모가 작은 것은 63년 이란 짧은 웅진 천도기간을 고려 할 때 아무래도 제한 적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했다.
(20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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