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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13) 493 백제 25대 무령왕 1

(공주 13) 493

 

백제 25대 무령왕 1

 

난세에는 늘 영웅이 나타나는 법이다. 웅진 천도시기에 25대 무령왕이 등장함으로써 쇠락해가는 백제왕조의 기틀을 잡았다. 그는 준비된 왕이었다. 내치에 혼신의 힘을 쏟았고 중국과의 외교에도 공을 들였다. 일본과의 관계는 전략적 동반관계로 발전 시켰다. 오래 전 왕인박사를 통해 천자문과 논어를 전수 해주었던 백제이기에 일본이 백제를 대하는 태도는 남달랐다. 임진왜란 전까지는 조선과 왜는 상호교류를 통해 긍정적인 시그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왜구의 발호는 왜 또한 어찌 할 수 없었던 점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

 

전국시대를 평정한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거대한 야망이 조선을 향해 임진왜란을 일으킨 이후로 조선과 왜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었고 그 흑 역사가 계속 이어져 결국 한일합방에 까지 이르러 불구대천(不俱戴天)의 관계로 변했다. 오늘날 세월이 많이 흘러 겉으로는 서로에 대해 상당부분 무디어진 것 같지만 여전히 앙금은 속으로 깊게 남아 지금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샜지만 우리가 일본을 이기려면 아니 한일 서로가 오랜 시간 쌓여있는 편견을 깨트리려면 그 답은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일본의 뿌리는 백제인이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은 역사를 아는 분이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고 나이 지긋한 일본인들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 한 때는 일본 고교생들이 부여로 수학여행을 와서 부여 시내를 청소한 적도 있었다. 자기 나라의 뿌리가 백제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고 있기에 하는 행동이고 늘 마음속에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아시아 전체를 병합하고 말 것이라는 신념 같은 무서운 생각도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작 우리들만 무관심하고 모를 뿐이다. 지금부터라도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새롭게 하고 우리나라 역사를 비롯해 주변 국가의 역사도 시간을 내어 체계적으로 살펴보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무령왕릉 발굴로 인해 많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이 드러났고 무령왕을 새롭게 조명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백제의 전성기를 부활시킨 왕으로써 새롭게 조명되었고 그의 업적과 치적 또한 크게 부각되어 웅진백제 천도 시기는 무령왕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백제부흥의 기틀을 잡았다.

 

(2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