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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김천 2) 501 천 년 대 가람 직지사

(김천 2) 501

 

천 년 대 가람 직지사

 

나는 여행을 통해 느끼는 낯 설렘을 통해 호기심을 이어가고 새로운 것이 눈에 띄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여행이 주는 가장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직지사 주차장은 임시 주차장인지 정돈되지 않은 허허벌판에 자리 잡았다. 뙤약볕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니 바로 대웅전 들어가는 입구가 보였다. 주차장에서 사찰 옆구리를 통해 바로 대웅전으로 진입하는 형식이 되었다. 일주문을 통해 서서히 핵심 공간으로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인 순서인데 현재 공사 중인 건물 때문인지 주차장 배치가 혼란스러웠다.

 

담장 옆구리 터진 곳을 지나자 바로 만세루가 나오고 만세루를 지나자 대웅전 앞마당이다.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를 쉬엄쉬엄 즐기며 만나야 하는 핵심공간이 바로 민낯을 드러냈다. 신라시대의 사찰임을 알 수 있는 쌍 탑과 대웅전이 당당한 모습으로 우리를 맞았다. 팔작지붕으로 한껏 멋을 낸 대웅전은 정면 5, 측면 3칸으로 절제미와 균형미가 탁월하게 느껴졌다. 한마디로 잘생긴 한옥 건축물로 귀티가 물씬 풍겼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35(1602)에 새로 지었다고 한다. 400년 이상 된 한옥 건축물이 그 당시 지은 모습 그대로 꼿꼿한 자태를 잃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고 직지사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면 국보로 지정되고도 남지 않았을까 싶었다. 내부는 공사 중이어서 대웅전 안은 볼 수 없어 아쉬웠다.

 

대웅전 내부에 봉안된 수미단은 順治八年辛卯四月 大雄殿 黃岳山 直指寺라는 1651년 묵서기(墨書記)가 확인됨으로써 대웅전의 중건과 함께 제작된 17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목조 불단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삼존불상과 벽화·단청, 그리고 삼존후불탱화와 함께 한 세트로 조성되어 불전 건축의 장엄함을 한 눈에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례이기에 여기에 오시면 꼭 대웅전 수미단을 만나 보시길 바란다.

 

대웅전 수미단

 

대웅전 수미단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모셨고 각 불상 뒤로 각 부처들의 설법장면을 묘사한 3폭의 불화(탱화)가 걸려있다. 모두 길이 6m 나 되는 거작으로 영조 20(1744) 직지사 세관 스님을 비롯한 16명의 승려장인(화승)이 그린 것이라고 한다. 짜임새 있는 구도와 탁월한 묘사력, 차분한 색조와 적색,녹색,황색을 주조색으로 한 배색이 조화를 이루어 불교회화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어 이 역시 보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불상 또한 부조 형식의 조각과 화려한 채색 법을 통해 조선후기 목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한다.

 

대웅전 창살은 전면부와 후면부의 모양이 서로 달랐다. 전면부, 후면부 또한 모두 통일된 문양을 사용하지 않은 것을 보면 통일성보다는 다양성에 좀 더 신경을 쓴 듯했다. 다양한 문양을 들인 것은 창건 당시의 소목장의 생각일 수도 있고 사찰 주지 스님이나 시주하는 신도들의 의중 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건축물이 가장 돋보이도록 하기 위한 고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가는 사찰 건축물은 종교 건축물이라는 특수성도 있기에 적당히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많은 생각과 지혜가 녹아 있는 건축물이기에 함부로 예단하기 쉽지 않았다.

 

대웅전 앞마당의 쌍 탑은 모두 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의 원형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설명문을 보니 직지사 석탑이 아니라 문경 도천사지 석탑으로 1974년에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했다. 단층기단으로 1층 몸돌이 2,3층 몸돌보다 크고 기단 폭보다 전체 높이가 커서 안정감이 떨어져 보였다. 안정감보다는 위로 솟은 상승감을 느끼도록 하여 작지만 크게 보이도록 했다. 상륜부는 화려한 장식을 하고 있는데 옮기고 나서 1976년에 추정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통일신라 말기 석탑으로 천 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보존 상태가 좋아 보물로 지정된 듯했다. 문경 도천사지에 그대로 남아 도천사지를 찾는 사람들에게 폐사지의 쓸쓸함을 조금은 달래주는 문화유산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옮겨온 석탑 대신 근대에 제작한 석탑을 세워 사찰 또한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고 변화해 간다는 표징으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우매한 생각이 들었다.

 

천년 대가람 직지사(直指寺)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의 본사로서 황악산(黃鶴山, 1111m)기슭에 자리 잡아 안온한 느낌이 드는 평지사찰에 가깝게 느껴졌다. 황악산의 '()'은 청(), (), (), (), ()5() 중에서도 중앙색을 상징하는 글자로 소백산맥의 우뚝 솟은 봉우리가 경상,전라,충청 3도의 경계이자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고 한다. 신라 눌지왕 2(418) 아도(阿道)화상이 창건하고 선덕여왕 14(645) 자광 율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해지나 창건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다고 한다. 여러 상황을 미루어 대략 추정할 따름이라고 한다. 418년에 창건되었다면 무려 1,600년이 넘은 고찰로 국내 최고의 고찰이 아닐까 했다.

 

(2023.8)

 

 

우리는 습관의 폭압에서 벗어나려고 여행을 한다(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