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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3) 502 선의 본래 마음자리

 

(김천 3) 502

 

선의 본래 마음자리

 

직지사는 조선시대에 들어 선조 29(1596) 임진왜란 때 43동의 건물 중 천불전(비로전), 천왕문, 자하문을 제외하고 모두 불에 전소되는 불운을 겪었다. 이후 여러 번의 중창불사가 있었으나 민족의 비극 6.25 동란 등을 겪으며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가 1958년 녹원 스님이 주지로 재직하면서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거행하여 사세를 크게 확장하여 오늘날 대가람을 형성하였다고 한다. 리더 한 사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새삼 엿보는 사례가 아닐까 싶었다.

 

현재는 대웅전과 규모가 큰 천불전을 비롯하여 65동의 전각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도 수많은 전각들이 밀집 배치되어 있어 천 년 고찰다운 품격은 다소 빛이 바래지 않았나 싶었다. 다행인 것은 대웅전을 비롯한 핵심 전각들의 품격이 도드라졌고 일반신도들은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는 천불선원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어 용맹정진의 참선 도량으로 단단히 자리 매김하며 직지사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직지사의 '직지(直指)'선의 본래 마음자리를 가리키는 손짓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것으로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가의 용어에서 따온 곳으로 알려져 있다고 하는데 선종의 가르침을 표방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름이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사적기 자료에는 사찰 이름과 관련한 또 다른 두 가지의 설이 소개되어 있다.

 

첫 번째는 창건주 아도화상이 도리사를 창건한 이후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만한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한 데서 절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과 고려 초 능여(能如) 스님이 사찰을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의 손으로 땅을 재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찰명이 지어졌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워낙 유명한 사찰이어서 작명에 대한 설도 다양했다. 내가 보기엔 선종의 가르침을 표방하는 의미로 지어지지 않았나 싶었다. 천불선원이 지금도 용맹정진의 참선 도량으로 자리 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2023.8)

 

 

모두에게 친절을 베풀면 손바닥 위에서 세상을 뒤집을 수 있다(에릭 와이너,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