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 4) 503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
직지사는 여러 기록에 남아 있기를 신라 말 당시 직지사를 거치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사찰의 격이 드높았고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오히려 조정에서 직지사에 고선종대가람이란 첩문(帖文)을 내려 비호함으로써 많은 선 지식인들이 대를 이어 배출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울러 해동(海東)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으뜸 가람이라는 뜻으로 동국제일가람(東國第一伽藍)이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역사도 오래되었고 전각의 수도 어마 어마 하고 직지사가 품고 있는 면적도 무척 커 대가람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사찰이지만 하나 아쉬운 것은 전각들이 너무 빽빽하게 들어서 있고 템플 스테이 및 일반신도들 교육을 위한 건물 규모도 상당해 고즈넉한 분위기가 많이 훼손 되어 복잡한 속세의 분위기가 느껴져 조금은 아쉬웠다. 거기에 불교대학까지 자리 잡고 있어 거대한 불교지식 전수 도량 같은 느낌이 들었다. 좋은 뜻으로 한 일이지만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 낸 흔적이 대가람 직지사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대웅전 옆으로 관음전, 응진전, 명부전 등의 건축물들이 이웃하며 형제 건물들처럼 사이좋게 서 있었다. 모두 임진왜란 때 전소된 이후 새로 지은 건축물이지만 대웅전과 더불어 직지사의 중요 건축물로 자리 매김하고 있었다. 관음전에서 멀지 않는 곳에 자리 잡은 비로전이 특별했다. 비로자나불을 봉안한 전각으로 알았는데 비로자나불외에도 천개의 불상을 모신 천불전이었다. 비로전(毘盧殿)은 고려 태조 때 능여 조사에 의해 처음 세워진 건물로 천불상을 함께 모시고 있어 천불전이라고도 했다.
조선시대에 천불상을 모셨던 세 곳의 사찰(마곡사, 대흥사, 직지사)중 하나여서 특별함이 느껴졌다. 임진 왜란떄 병화를 모면한 3동의 건물 중 하나로 근년에 개수하였다고 한다. 정면 7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양식으로 크기는 53평에 금단청을 하였다. 천불상도 같은 시기에 조성되었으며 과거,현재,미래의 삼천불 중 현겁 천불을 모셨다고 한다. 또한 비로전 앞에는 수령 500년이 넘는 측백나무가 있으니 잘 살펴보시길 바란다.
(2023.8)
가장 큰 희열은 가장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였을 때 찾아온다(시몬 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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