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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9) 517 통도사(通度寺) 극락암 3

 

(양산 9)  517  

 

통도사(通度寺) 극락암 3

 

작은 암자의 일주문처럼 느껴지는 여여문을 통과햐면 극락암의 핵심공간이다. 여여문(如如門)에 담긴 뜻이 깊었다. 한결 같이 변함없이 깨달음에 정진하라는 뜻이 담겼는데 경봉 선사의 글씨라고 한다. 극락암의 경봉 선사 글씨체 중 가장 미적으로 아름답고 예술적 감각이 물씬 느껴졌다. 처음 볼 때는 마치 추사 김정희 글씨인 줄 알았다. 여여문을 통과하면 수세전과 정수보각이 정면과 좌측으로 보이고 우측으로는 주 법당인 극락전이다.

 

수세전은 고종 황실의 무병장수를 기원할 목적으로 그 당시 양산군수가 왕명을 받들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내부 천정의 단청과 탱화가 무척 화려했다. 조선 황실도 영축산의 양택 명당에 자리 잡은 극락암의 터가 좋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정면 3, 측면 2칸의 작은 건축물이지만 팔작지붕을 해 영축산과 멋진 조화를 이룬 모습이었다. 특이하게 산신각을 함께 들였고 이중 처마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보존 상태도 양호했다.

 

정수보각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이 역시 팔작지붕을 들였는데 단청을 하지 않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고 있었다. 지금은 요사채로 쓰고 있다고 했다. 주련은 경봉 선사의 글씨이자 경봉 선사의 게송(偈頌:불교적 교리를 담은 한시의 한 형태)이라고 한다. 게송이라고 해서 특별함이 있겠지만 경봉 선사의 게송은 일반인들도 이해하기 쉽게 썼다. 누구나 용맹정진하면 깨달음의 길에 이를 수 있음을 게송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주 법당인 무량수각(無量壽閣)은 고종 30(1893)에 중건한 건물로 정면 7, 측면 5칸의 맞배 지붕형식으로 극락암 전각 중 가장 큰 건축물이다. 내부 본전불로는 서방 극락세계에 머물고 계시는 아미타부처를 모셨다. 무량수각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 극락암은 청남 오제봉선생, 사자후는 회산 박거돈 선생, 호국선원은 경봉 선사께서 쓴 글씨라고 했다. 한 건축물에 여러 사람의 글씨체로 편액이 걸린 것이 독특했다. 서체가 서로 달라 느낌이 묘했다. 통일성은 없었지만 다양함이 주는 신선함이 돋보였다. 모두 명필이지만 각 자의 개성이 한 껏 드러나있어 서체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분들에게는 유익함이 있을 듯했다.

 

(20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