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10) 518
원광제와 삼소굴
자신만의 서체를 만들 수 있는 것 자체가 대단해 보였고 서체를 보면서 글을 쓴 사람의 성정도 살짝 엿볼 수 있었다. 말과 글 그리고 서체도 모두 그것을 행한 사람의 인품과 성정이 느껴지기에 예로부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하지 않았나 싶다. 무량수각 툇마루가 단정했다. 단청만 하지 않았다면 불교 건축물이 아니라 일반 한옥 건축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했다. 툇마루에 잠시 앉아 툭 터진 조망도 감상하고 극락암이 주는 차분한 기운을 느껴보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무량수각 옆으로 원광제와 삼소굴(三笑窟)이 있는데 경봉 선사의 체취가 배어 있는 곳이다. 서로 이웃해 있으면서도 거리를 두었다. 두 건물 모두 경봉 선사의 생활 공간이었는데 원광제는 정면 4칸, 측면 3칸 맞배지붕 형식의 건물로 경봉 선사 유물 보관장소 겸 극락선원장의 거처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원광은 경봉 선사의 호라고 한다. 삼소굴은 정면 4칸 측면 2칸 맞배 지붕 형식의 건물로 경봉 선사께서 36세부터 91세로 입적 하실 때까지 기거하셨던 곳이다. 지금은 경봉 선사의 영정을 모셨다고 한다.
삼소라는 이름은 경봉 선사께서 득도 후 지은 이름으로 깨달음의 웃음을 뜻한다고 했다. 두 건물 모두 다양한 편액이 걸렸는데 원광제 현판은 팔능거사로 알려진 석재 서병오, 호쾌대활(豪快大活), 노송운영(老松雲影)은 추사 김정희, 무진장(無盡藏)은 경봉 선사의 글씨라고 한다. 언제나 쾌활하고 낙천적인 정신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경봉 선사의 정신을 담아 호쾌대활이란 글씨를 쓴 듯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찰에서는 좀처럼 쓰는 표현이 아님에도 경봉 선사의 평소 언행을 느끼도록 하기 위해 쓴 듯했다. 삼소굴의 삼소굴 글씨는 석재 서병오가 방장(方丈)은 경봉 선사의 글씨라고 한다. 추사의 글씨체도 용어에 따라 조금씩 필체에 차이가 있어 보였다. 호쾌대활에는 호쾌하고 자유분방함이 느껴졌고 노송운영에서는 정제된 예술체로 느껴졌다.
삼소굴이란 글씨체에서는 미소 짓는 얼굴이 느껴졌다. 원광제와 삼소굴 앞 마당을 지나 극락영지 가는 길에 있는 2층 누각이 단연 도드라졌다. 설법전이자 영월루라는 편액이 전후면에 붙어 있었다. 극락암 전각 중 내게는 설법전과 영월루를 겸하고 있는 2층 누각이 단연 돋보였다. 작은 암자임에도 큰 사찰에 있는 누각을 들였다. 이곳에서 극락영지(연못)에 비친 달도 보고 통도사 방향으로 툭 터져 있는 멋진 조망도 감상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건물에 무척 정성을 들인 느낌이 들었다. 정면 5칸, 측면 2칸, 방자 형 창살과 머름난간 그리고 홑처마 형식의 맞배지붕 2층 누각이 무척 아름답게 느껴졌다.
(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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