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천 2) 521
옥순봉, 구담봉 2
옥순봉, 구담봉은 제천에 속하지만 제천 10경에도 포함되고 단양팔경의 하나로도 유명하다. 옥순봉(玉荀峰)은 희고 푸른 아름다운 바위들이 힘차게 솟아 있는 모습이 마치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하여 옥순이라 부르며 구담봉(龜潭峰)은 기암절벽의 바위 형태가 마치 거북의 등을 닮았고 물속에 비친 모습 또한 거북무늬가 선명하게 보인다고 하여 구담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드론을 띄워서 보거나 청풍 호반에서 바라보아야 제대로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조선 정조 때 연풍현감으로 부임한 단원 김홍도는 옥순봉의 빼어난 자태를 화폭에 담았는데 그 당시 옥순봉의 모습은 김홍도가 그린 산수화와 풍속화를 모은 《김홍도필 병진년 화첩》에 남아 있다. 그 당시 그가 그린 그림 속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 산천은 그 자리에서 인간이 훼손시키지 않는 한 늘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기에 과거와 오늘 그리고 미래의 시간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옥순대교의 짙은 주황색과 짙은 녹색의 청풍호반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신선경을 연출했다. 이 사진을 싱가폴에 살고 있는 친한 형에게 실시간으로 전송하자 금세 응답이 왔다. 한국에 이런 곳이 다 있냐고? 1주일 전 한국을 2주간 여행하다가 갔지만 이런 풍경은 처음 본다고 했다. 하긴 우리도 오늘 처음이나 속내를 보이지 않고 담에 오시면 꼭 모시고 구경 시켜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옥순봉 전망대에서 청풍호의 크기를 전체적으로 가늠해보고 주변의 산들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순간 조용한 고요가 밀려왔다.
고요한 적막감이 잠시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우리 일행 외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가 옥순봉을 독채로 전세 낸 느낌으로 마음껏 즐기면서 청풍호와 주변 풍광을 바라보고 있으니 그동안 쌓였던 온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여유로움이 저 밑에서 올라왔다. 한 달에 한 번 정신을 순화시키고 온 몸의 긴장감을 내려놓는 시간이 왔다.
우리가 의도하지 않아도 큰 자연인 산이 우리에게 주는 무언의 자비다. 계속 산을 찾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옥순봉 전망대와 옥순봉을 천천히 둘러보고 하산하기 직전 좌측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 옥순봉 정상을 우러러보고 청풍호반을 좀 더 가까이 바라 볼 수 있는 곳에서 가져온 간식을 풀었다.
얼마 전 일본을 다녀온 대원 하나가 일본사케를 가져와 딱 한 잔씩 나누어 들고 가져온 간식을 안주삼아 이야기꽃을 피웠다. 내리 쬐는 햇빛을 직접 맞으면 여름의 한 복판에 있는 듯하고 약간의 그늘이라도 그늘 밑에 있으면 아주 시원했다. 동일한 공간에서 그늘의 유무가 극명한 차이를 만들고 있었다. 다들 가져온 간식을 풀어 놓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같은 음식이 하나도 없었다. 김밥, 토마토, 햇밤, 인절미, 호박 백설기, 사과, 배 등등
비슷한 성정을 지닌 우리들도 개성은 천차만별, 모두 다르다는 진리를 또 한 번 깨달았다. 30여 분간의 휴식시간을 마치고 다시 왔던 길로 되돌아섰다. 하산은 길을 알다보니 운행속도가 빨랐다. 금세 삼거리에 도착해서 배낭을 한 곳에 모아두고 몸을 가볍게 한 채로 구담봉 방향으로 들어섰다. 초입부터 내리막 계단이 나타나 천천히 걸어야 했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나타나는 청풍호반의 비경과 구담봉 일대의 자연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천상의 풍광을 보는 듯했다
구담봉 정상의 비경
지금도 이처럼 수려하고 아름다운데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는 얼마나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줄까 싶었다 절정의 단풍철에는 이곳은 인산인해를 이루어 몸살을 앓지 않을까 했다. 아니 그럴 것이 뻔해 보였다. 오히려 오늘 미리 와서 천천히 보고, 감상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내리막이 계속 되다가 다시 구담봉을 향해 오르는 제법 긴 오르막 계단이 이어졌다. 막상 걸어보니 크게 무리는 되지 않았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는 힘들겠지만 단지 248계단은 크게 어렵지 않을 듯했다. 중간 중간 수려한 풍광에 저절로 쉬어가게 되니 그 또한 도움이 되었다.
구담봉 역시 정상 석은 아담했고 바로 뒤에 있는 전망대에서의 조망이 단연 압권이었다. 장회나루 선착장이 빤히 바라보이고 작은 보트들이 수상스키처럼 청풍호를 가르는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다. 흰 포말을 꼬리에 달고 자유자재로 운행하고 있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우리도 작은 보트를 타고 청풍호반을 질주하고픈 날 것 같은 욕망이 발톱을 드러냈다. 대 자연에 순화되고 정화된 몸에도 수컷의 본능은 살아 있었다.
주변의 산과 청풍 호반이 어우러지며 보여주는 풍광은 찬탄을 금치 못하게 했다. 옥순봉과 구담봉은 각 자 다른 위치에서 자신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황홀할 정도의 비경을 보여주며 여기에 온 사람들을 축하 해주는 듯했다. 금수강산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은 곳곳에서 숨죽이며 빛나고 있었다. 이곳 전망대에서 단체사진과 개인 사진을 찍고 구담봉 정상 석에서도 추억을 새기기 위해 단체사진을 남겼다. 마침 주변에 다른 산악회 회원들이 있어 자연스럽게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우리들만의 오붓한 느낌의 사진과 타 산악회 사람들과 함께 한 사진을 남겼다. 산에 오면 모두가 친구가 되고 서로 배려하고 격려하는 마음이 된다. 도심 속에서는 그런 마음을 언제 내가 지녔었는지도 모르게 달라지는 아이러니는 여전히 우리의 숙제로 남아 있지만 언젠가는 서로를 배려하고 위해주는 따뜻한 문화가 넘치는 사회가 구현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023.9)
안정과 완벽은 죽은 세계, 불안이 세계의 진상이다(최진석, 인간이 그리는 무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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