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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언양 1) 523 언양 성당 1

(언양 1)  523

 

언양 성당 1

 

지방을 여행 할 때마다 자주 찾게 되는 곳 중의 하나가 성당이다. 내가 천주교 신자인 것도 있지만 지역적 특색을 지닌 성당 건축물을 둘러보는 것은 또 다른 재미이자 시대상을 닮은 건축물을 통해 성당 건축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아보는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성당 건축물이 어떻게 운영(사용)되고 있는지도 살펴보면 서울과 지방의 차이가 느껴지고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통해 동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서로 다른 환경에서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된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평소에는 자신을 되돌아보는 일이 없다가도 낮선 환경에 처하게 되면 그렇게 되는 것이 한편으론 신기하게 느껴진다. 복작거리는 환경에 살던 도시민이 한가한 느낌이 드는 지방 소도시의 환경에 접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도시민의 복잡한 생각과 사고를 내려놓게 되고 지방 소도시의 자연과 환경에 동화되어 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주 잠시이지만 그런 느낌이 내게는 무척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여행이 주는 특이한 경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1936년 울산지역에 최초로 건립된 언양성당은 13개의 천주교 성지와 사적지 그리고 16개의 공소가 있는 경남 지역 천주교 신앙의 출발지이다. 울산 지역에 이토록 많은 성지와 공소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1990년엔, 언양 지방 천주교 선교 200주년을 기념하여 신앙유물전시관이 언양 성당 내에 만들어졌다고 한다.이곳엔 각종 신앙 유물을 비롯해 민속 유물과 본당 단체들이 남긴 기록, 초기 교회 교우들이 사용하던 각종 기도서와 교리서 등 고서, 제의 등 총 696점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특히 신앙 유물은 교황청에 등록된 귀중한 자료라고 했다.

 

언양 성당은 언양 시내를 내려다보는 낮은 언덕에 자리 잡았다. 고딕 형식의 석조 건축물로 오래되었지만 당당한 외관과 뾰족한 첨탑은 언양의 수호천사를 자처 하고 있는 듯 당당했다. 지금도 성당의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어서인지 전반적으로 잘 관리되고 있는 듯했다. 전면과 측면은 석조인 반면 후면은 벽돌로 마감한 것이 독특했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건립 당시, 향후 신자의 수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증축을 용이하게 하기 위함과 건축 당시의 어려웠던 재정 상황을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보드뱅 신부

 

성당 내부는 무척 안온했다. 수수한 인테리어와 빛이 잘 드는 창으로 인해 아늑한 느낌까지 들었다. 크지 않은 성당 내부의 긴 의자들이 조밀했다. 중간부근 의자에 잠시 앉아 기도를 드렸다. 도심지의 성당보다 기도가 잘되는 느낌이 들었다. 엄숙하게 느껴지지 않아도 거룩한 성소의 이미지가 온 몸으로 전달되었다. 100년 가까이 된 성당이 이처럼 큰 손상 없이 보전되어 지금까지도 미사를 집전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한국 천주교회가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살아남아 오늘날 500만 가까운 신도를 자랑하는 거대한 종교단체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천주교 도입 당시의 사회적 배경이 많은 역할을 했지만 신앙에 몸 담았던 민초들의 남다른 신앙심과 신앙을 향한 강인한 정신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이곳에 와서야 제대로 알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지만 중요한 내용을 잘 정리하여 언양 성당 홈페이지에 소개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자료가 무척 방대하였지만 중요 내용을 잘 요약해 무척 유익했다.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1926125일 언양 본당이 설립되고 나서 초대 주임으로 보드뱅(E. Beaudevin, 丁道平) 신부가 이듬해 44일 정식 임명을 받고 514일 본당에 부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성당 신축을 계획하고 추진 방안을 세우는 일이었다고 한다.

 

보드뱅 신부가 직접 설계를 맡았고, 명동 성당을 지었던 중국인 기술자들을 불러들여 1929년 봄에 공사를 착수하여 6년에 걸친 신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19361025일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하고 드망즈(F. Demange, 安世華) 주교 집전으로 봉헌식을 거행하였다고 한다. 여러모로 어려웠던 시절 6년이나 되는 긴 시간을 인내하며 준공을 본 그 마음이 내게도 어렴풋이나마 느껴졌다.

 

(2023.8)

 

고통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견디는 것이다(정호승, 내 인생에 용기가 되어 준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