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양 4) 525
언양 성당 3
실학의 태동
조선 후기 사회의 혼란과 변화에 대해 이를 수용하고 새로운 사회 질서와 혁신을 추진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자 이에 대응하여 나타난 사상체계 중의 하나가 곧 실학이다. 실학은 성리학적 가치체계의 붕괴현상으로 인한 경제, 사회적 변화를 직접적인 배경으로 삼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서학을 통한 천주교의 전래와 명말청초(明末淸初)의 학문적 영향을 중요한 외적 요소로 받아들였다.
즉 당시의 실학자들은 청대의 강력한 민본,민족의식,현실개혁 사상의 영향을 받으면서, 17세기 이래 중국에서 활동하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책을 통해 수학,천문학,농학과 같은 과학기술과 천주교 신앙을 탐구하면서, 그것들을 부조리한 사회의 개혁을 위한 이념과 방편으로 삼고자 했다. 이 시기 실학의 특성은 낡은 봉건적이고 전근대적인 의식에 반대하고 근대지향 의식으로 조선후기 사회의 기존 문화풍토를 반성하며, 민족에 대한 자각을 일깨워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추구하는 민족 지향적 사상의 특징을 나타냈다.
현실을 중시하는 실학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 또한 지대하였다. 기존 사회질서를 개편하고 사회발전을 열망하는 실학자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과학기술의 도입은 절실한 염원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실학 사상가들에게 천주교는 자연스럽게 그 이념적 근거를 제공해 주는 신념체계로 받아들여지게 되었으며 천주교에 대한 연구로 이어졌다.
근대 사회로의 발전을 열망하는 이들 실학자들에게도 천주교가 모든 이들에게 호의적으로만 받아들여졌던 것은 아니다. 오랫동안 성리학적 틀에서 생활해 온 이들에게 유일신의 존재와 영혼의 불멸, 내세의 구원 등을 강조하는 천주교는 대단히 이질적인 것으로 보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천주교 사상과의 접촉은 지식계층 사이에서 비교적 광범하게 전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 신앙에 귀의하는 문화적 수용은 보다 제한된 범위에서 일어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한역서학서
서학이 조선에 들어온 것은 16세기 초부터였으나 처음에는 이질적인 문화적 접촉에 불과했으며, 17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실학자들에 의해, 본격적으로 학문의 대상으로 수용되도록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한역서학사라고 한다. '한역서학서'는 명말청초에 걸쳐 서양 선교사들이 중국에 천주교를 전파하고 서양문명을 전수시키기 위해 번역 또는 저술한 종교, 윤리,지리,천문,과학,역사 그리고 기술관계의 서적을 말하는데 이 책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되었다는 기록은 선조시대의 학자인 이수광의 저서인 [지봉유설]에 나와 있다고 한다.
한역서학서의 수용은 중국으로부터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려고 한 일종의 지적 운동으로 이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 조선의 기존 제도와 질서, 사회체제를 보완하고자 하는 움직임이었다. 이러한 목적에서 한역서학서를 적극 수용하게 되었고, 학문적 연구를 뛰어넘어 이를 몸소 실천하려는 움직임이 천주교회 창설 직전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770년대 후반기에는 강학(謹學)의 형태를 통해 천주교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히 진행되었다고 한다. 강학을 통해 종교적 진리와 성리학적 가치를 재검토하고 나아가 그 과정에서 천주교 서적에 관한 문제점과 천주교 서적에서 논하고 있는 여러가지 내용의 검토도 부분적으로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천주교에 대한 종교적 측면의 인식이 심화되어 단순한 서양의 문화 혹은 철학이라는 인식으로부터 천주교가 가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깊은 인식을 새롭게 하게 되었다고 한다(1777년).
강학과 실천으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이려고 하였던 학자 중의 하나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회 영세자인 이승훈은 그의 부친의 배려로 중국으로 갈 기회가 생겼고 여러 노력 끝에 그라몽 신부로부터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영세를 받은 후 정조 8년(1784년) 봄에 귀국하게 된다. 귀국하자 이벽이 그를 찾아와 그가 중국으로부터 가져온 교리서와 상본, 십자가 등을 건네 받아 이를 집중적으로 검토한 끝에 이벽은 이미 천진암, 주어사 강학회를 전후하여 그가 깨우칠 수 있었던 보유론적 천주 신앙의 이해를 더욱 굳히는 한편 천주교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보유론적 천주 신앙이란 유학의 입장에 서 있으면서 유학철학의 가르침을 보다 확충한 학문의식으로 바라본 천주 신앙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정의하면 유학을 보충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천주신앙을 말하다고 할 수 있다.
(2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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