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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합천 1) 440 가야산 입구 풍경

(합천 1) 440

 

가야산 입구 풍경

 

어느 덧 9월이다. 계절의 변화는 서서히 오는게 아니라 순식간에 온다. 찌는듯한 무더위도 처서가 지나자 꺽였다. 계절의 윤회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단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각성의 시간일수도 있다. 10월은 아직 멀었지만 계절의 윤회를 떠올려보는 차원에서 지난 10월 올랐던 합천 가야산 산행기를 올려본다.

 

가야산 국립공원은 4개 군, 1개시에 걸쳐있을 정도로 면적이 넓다. 거창군, 성주군, 합천군, 고령군, 김천시가 바로 그곳이다. 너른 품을 가진 산답게 법보사찰 해인사를 품고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한 글자도 오타가 없을 정도로 구국의 신념으로 만든 국보 문화재다. 명산 가야산을 대한민국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 중에서 제일 늦게 찾았다. 마음공부가 부진했기에 찾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늘 마음속으로 수 없이 찾아 가기를 다짐하다가 이번 가을(2021.10) 단풍철을 맞아 기회가 주어졌다. 마음속에 담아 둔 소망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법칙이 이번에도 유효했다. 서울에서 제법 멀기에 12일로 잡고 편한 마음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법보사찰 해인사도 둘러보고 인근 성주도 일부 둘러 볼 요량으로 계획을 세웠다. 성주 또한 처음 찾는 고장이기에 설렘의 강도가 컸다.

 

산행 당일 올 가을 들어 첫 한파(?)가 온다는 말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출발 전날 아내가 내일 추울 줄 모른다고 겨울 등산복을 챙겨준 것이 유효했다. 함께한 일행들 모두 나름대로 준비를 완벽하게 갖추어 오늘 산행은 크게 어렵지. 않을듯 했다. 평소와 달리 입산 전 준비 체조에 조금 더 시간과 정성을 쏟았다. 1430m의 고산을 오르는 산행이기에 모두들 마음속으로 단단히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백운동 탐방코스는 만물상 코스와 용기골 두 코스로 나뉜다. 만물상 코스는 힘은 많이 들지만 가야산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는 코스로 유명한 곳이다.

 

어제 그리고 새벽에 비가 온 관계로 국립공원 관계자분들이 산객들을 용기골 코스로 가도록 유도했다. 만물상 코스로 가려면 전부 기록 대장에 이름을 쓰고 전화번호도 기재 후 가라고 엄포(?)를 놓았다. 힘든 것은 둘째 치고 등산로가 빗물로 젖어있어 위험하다고 계속 강조를 하신다. 등산로가 대부분 바위 길이어서 매우 미끄럽다고 했다. 못 이기는 척하고 우리도 용기골로 방향을 잡았다. 이제는 안전산행이 우선이라는 철칙이 몸에 배어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흐린 날씨에 10도 내외의 온도를 보이고 있었다. 마침 바람도 세게 불어 체감온도는 더욱 떨어졌다. 오전 10시 반인데도 마치 늦은 오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날씨가 흐렸다.

 

미침 초등학생 두 명을 동반한 가족이 산행 시작하기 전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어 어디까지 가냐고 물으니 상왕봉까지 간다고 한다. 이런 날씨에 초등학생을 데리고 산행 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겉으로는 대단하다는 말로 격려의 말을 전했다. 용기골 방면은 사실 그리 큰 어려움은 없기에 체력만 문제없다면 능히 해낼 수 있는 코스지만 어린아이들이 과연 감당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등산 경험이 많은 가족들처럼 보이지 않아 내심 불안했으나 부모들이 잘 알아서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무사산행을 축원해 주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인간에 대한 존엄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어 걱정이다. 얼마전 있었던 세 모녀 자살 사건을 보고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조금이라도 기댈 언덕으로 떠올려 볼 수 있는 사람이 단 한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까 싶다. 누구나 사람은 존엄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말들은 하지만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이자 병폐라고 할 수 있는 빈부의 격차는 사람의 존엄에 대한 생각을 나와는 상관없는 일로 치부한다. 내가 어려운 상황에 있지 않을 경우 결코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의 처지를 이해할려고 하지 않고 이해할 수도 없다. 총알처럼 바삐 돌아가는 사회속에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도 벅찬 세상도 한 몫을 한다. 따뜻한 자본주의를 주창하는 자본주의 4.0이 대두된 배경도 이것과 무관하지 않다.

 

거창하게 시작하기 보다는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이 누구든간에 따뜻한 미소와 태도로 대하는 것부터 실천해야 겠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로 대하면 상대방 또한 자신이 특별한 존재로 대접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한 느낌을 받지 않을까 싶다. 선비는 자기를 믿어주고 인정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받친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따뜻한 미소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는 풍토가 자연스러운 사회가 진정한 선진사회가 아닐까 싶다. 나의 작은 미소, 친절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겠다. 법보사찰 해인사를 품은 가야산에 와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길었다.

 

(2021.10)

 

도를 행한다 함은 날마다 덜어내는 것이다(도덕경 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