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2) 441
가야산 서성재
가야산 용기골 코스는 전반적으로 무난한 편이었다. 입구를 지나 백운암지까지 완만한 오름세가 계속 이어졌다. 계곡의 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산 덩치에 비해 용기골 방면의 계곡은 미미했다. 여름이 아직도 건재하고 있는 듯 숲은 진초록 옷을 그대로 입은 채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적지 않은 산객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더니 30여 분 정도 지나자 모두 사라졌다. 산에 들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홀연히 사라졌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붐볐던 산길이 고요해졌다. 갑자기 적막이 찾아왔다. 우리들 일행만 조용한 숲길을 천천히 올랐다. 모처럼 마음에도 고요가 찾아왔다.
백운암지에 이르자 평평한 평지 절터가 나타났다. 아주 오래전에 암자가 있던 곳이라고 했다. 1천m 높이 가까운 곳에 절터가 있었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금은 터만 남은 채 절의 형태는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었다. 주변에 기둥 자리의 기단 몇 개만 덩그러니 남아 이곳에 건물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제법 너른 터로 보아 절이 있을 당시는 규모가 꽤 있는 절로 추정되었다. 절터는 안온했지만 폐사지 특유의 쓸쓸함이 묻어났다. 창건과 폐사시기에 대한 기록이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 당시 가야산 일대에 뿌리 내렸던 수많은 암자 중 하나였기에 기록 유지에 큰 관심이 없지 않았을까 했다.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따르면 가야산은 1972년 국립공원 제 9호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예로부터 해동(海東)의 10승지이며 조선 8 경의 하나로 이름이 드높았다고 했다. 공원 면적은 76.256㎢이나 되고 주봉인 상왕봉(1,430m)은 소 머리를 닮았다 해서 우두봉(牛頭峯)으로도 불리고 있다고 한다. 나중에 정상에 올라 본 상왕봉과 우두봉 두 개의 이름이 새겨진 정상석 표지판이 특이했다.
백운암지를 지나서부터 경사가 가팔라졌다. 1천 m 높이 까지 작은 계곡이 이어지는 것이 신기했다. 울창한 숲은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였지만 울창한 숲에 비해 아름드리나무들은 많이 보이지 않았다. 바위산의 특징이지만 가야산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화재 등의 영향도 있지 않았을까 했다. 만물상 코스와 만나는 서성재에 이르자 비로소 능선에 온듯한 느낌이 들었다. 순간 바람이 엄청 세게 불어왔다. 여름철이라면 아주 시원할 듯했지만 오늘은 제법 춥게 느껴졌다. 겨울철에는 그야말로 삭풍이 부는 능선으로 악명이 높을 듯했다.
만물상 코스와 용기골 코스가 만나는 곳 서성재는 가야산 등산의 중간 도착지이자 가야산 산행의 분수령이다. 서성재는 경북 성주군 수륜면과 경남 합천군 가야면을 이어주는 고개 마루다. 아주 오래전 존재했던 가야산성의 서문이 위치해 있었다고 해서 서성재라는 이름이 명명되었다고 했다. 예로부터 산성은 국토방위의 요충지로 잘 알려져 있기에 이곳 또한 그 당시 굉장히 중요한 군사적 시설로 자리 매김 하였을 것으로 추측되었다. 백제와 신라 그리고 가야가 힘을 겨루던 곳이기에 그 중요성은 무척 크지 않았을까 했다. 1천 m 가 넘는 이곳에 성을 쌓기 위해 동원된 민초들의 땀과 노력이 지금은 잔재로 남아 잔잔한 아픔을 전해주고 있었다. 바람이 유독 이곳 능선에서 세게 부는 것 또한 그런 영향이 조금은 있지 않을까 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하며 산다. 불행은 분별하거나 집착하는데서 온다고 한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깨달음은 분별과 집착이 없어진 마음상태를 이른다고 했다. 깨달음도 집착이라고 볼 수 있지만 깨달음에 이르면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자세가 되기 때문에 깨달음은 사람에게는 궁극의 길이라고 한다. 얼마 전 속리산 법주사를 들렀을 때 마침 주지 스님께서 법문을 하는 자리에서 우연히 엿들은 내용이다. 깨달음에 대해 흐릿했던 생각이 명료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도 시절인연이 아닌가 했다.
사실 되돌아보면 모든 다툼과 분쟁은 서로 비교하고 분별하며 내것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생각에서 비롯된다. 모든 것을 자기 중심에 두고 생각하는 집착에서 온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고 세계인 또한 다름 아니다. “우리는 서로 손등과 손바닥 같은 관계이기에 서로 싸우고 공격하는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 인드라망 공동체 대표안 도법스님께서 말씀 하신 내용이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 아닌지 싶다.
아프고 병든 사람에게는 평범한 일상의 삶이 최고의 기적이다. 평범한 것에 감사하고 평안한 일상이 곧 행복임을 알면서도 우리는 늘 무지개를 쫓으며 살아간다. 큰 자연, 산에 들면 그것을 깨닫다가도 다시 속세에 던져지면 금세 잊어 버리고 속세에서 추구하는 삶을 살아간다. 언제쯤 분별과 집착하지 않는 삶을 살아 갈 수 있을지 아득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이루어진다는 믿음만이라도 안고 살아가고 싶다.
(2021.10)
무소유라는 말은 재산을 많이 갖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어떤 형상을 지어서 그것을 진짜로 정해버리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뜻이다(최진석, 노자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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