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4) 443
가야산 상왕봉과 해인사
칠불봉에서 상왕봉 가는 길은 멀지 않았지만 칠불봉을 가야산 정상으로 오인하고 남은 힘을 전부 쏟아부은 사람에게는 힘이 들 듯했다. 상왕봉 오르는 마지막 계단은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느껴졌다. 크지 않은 평원에 두 개의 봉우리가 서로 이웃하며 형제애를 자랑했다. 바위로 뭉쳐있는 상왕봉 정상과 정상 표지석이 독특했다. 일행들과 함께 정상 인증 샷을 찍고 개인별로 각자 원하는 위치에서 독사진을 찍으며 기운 좋은 가야산 정상 탐방의 기쁨을 만끽했다.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되어 있는 상왕봉 일대는 작은 평전을 이루고 있었다. 일반적인 산 정상부와는. 아주 판이했다. 상왕봉과 칠불봉이 서로 마주 보고 키 재기를 하면서도 아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전형적인 모습처럼 여겨졌다. 일행들과 한동안 머물며 가야산의 해맑은 정기를 마음껏 향유했다. 온 몸이 가벼워졌다.
하산은 해인사 방면으로 잡았다. 하산 길이 무난했다. 해인사에 가까이 갈수록 숲이 풍성했다. 이쪽 방면으로 올랐다면 다소 지루 할 듯했다. 10월 중순이었지만 여름이 늦게까지 남아 산 정상부는 단풍이 들기도 전에 잎들은 떨어졌고 산 중턱 아래는 진초록의 잎들이 그대로 남아 가을과 여름이 공존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올해 단풍은 제대로 즐길 수는 없었지만 오르고 싶었던 가야산을 절친 들과 함께 오르고 가야산의 풍광을 제대로 보고 느껴보았으니 그것으로 족했다.
하산 길 중간, 으슥한 산기슭에 서있는 석조여래입상이 독특했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는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위치에 숨어 있었다. 마침 안내 표시판이 잘 설치되어 있어 찾기가 수월했다. 보물 264호로 지정된 210cm의 석조여래입상의 얼굴에 번진 온화한 미소에서 품격이 느껴졌다. 통일 신라 말에서 고려 초로 추정되는 입상이 천 년의 세월을 지나왔음에도 주름잡인 선과 꼿꼿한 자세 그리고 온화한 미소는 예술작품에 가까웠다. 물론 나만의 생각이다. 정교한 면은 없지만 순진무구의 정신으로 지방의 솜씨 좋은 장인이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와 작품을 남긴 것 자체가 대단하게 여겨졌다.
하산 후 해인사가 자랑하는 팔만대장경과 해인사의 전각들을 둘러보는 행운을 가졌다. 부처의 산 가야산과 해인사는 한 몸을 이룬 채 대한민국 최고의 산과 사찰로 우뚝했다. 이중환선생께서 택리지에 가야산을 보고 “불꽃이 공중에 솟은 듯하다”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손꼽히는 탐승지이며 구도 처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산으로 느껴졌다. 불꽃처럼 열정적인 구도심을 내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는 가야산은 해인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좋은 기운을 지속적으로 전해줄 듯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 결코 쉽지 않지만 가야산이 좋은 기운으로 도와준다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까 했다. 해인사에서 깨달은 선각자들이 많이 배출되어 어지러운 사회를 단 숨에 정화하고 대한민국이 정신문명 분야에서 세계의 모범국가로 자리 매김하는데 일조 해주길 간절히 기원했다.
인간의 내면에는 고결한 인품과 더불어 경우에 따라서는 잔인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악함도 있는 존재다. 성선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구가 약간 비딱하게 서있는 것처럼 대체로 인간은 악의 방향 쪽으로 살짝 치우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는 게 지옥이라는 말이 헛된 말이 아니다. 인간관계의 핵심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 있다. 나가 아닌 남을 중심에 둘 때 인간관계는 빛이 난다.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다.
험난한 인생을 잘사는 방법은 자기중심성을 버려야 한다. 각박한 세상에 살아 남기위해 남보다 나를 먼저 챙겨야 하는 삶에 익숙하기에 쉽지 않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살아가는 사람은 늘 사는 게 긴장의 연속이다. 원망과 불평 또한 다반사로 일어나기에 행복한 시간보다 불행한 시간과 더 친숙하다. 한정된 시간을 살아가는 인간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비슷하지만 가끔씩 대자연을 찾아 겸손해지는 법을 배운다. 대 자연이 있기에 그나마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치부하고 싶다. 높은 산에 오르지 않아도 가까운 자연을 찾아 잠시나마 자연과 하나 되는 시간을 통해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돌려놓을 수만 있다면 이 또한 유익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가야산 산신(?)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가 길었다.
(2021.10)
마음을 비우면 몸과 마음의 건강도 되찾게 될 뿐 아니라 지혜의 눈도 밝아진다.
(권기헌, 가야산으로의 7일간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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