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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합천 5) 444 해인사

(합천 5) 444

 

해인사

 

법보종찰(法寶宗刹) 해인사는 가야산의 품속에서 안온했다. 대가람 해인사는 가야산의 정기가 뿌리를 내린 곳에 자리 잡아 옹골찼다. 수많은 사람들이 들고나는 사찰이지만 번잡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워낙 터가 크고 전각들이 많아 수많은 방문객과 신도들을 골고루 분산하는 놀라운 기술을 지닌 듯했다. 해인사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으로 오래된 옛 친구를 만난 듯한 반가움이 있었다. 누구든 반갑게 맞아주는 사찰이라는 느낌과 대 가람이지만 크게 자기를 내세우지 않고 큰 자연의 품속에서 겸허히 존재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가야산이라는 큰 자연이 뒷배를 단단히 받쳐주고 있기에 가능한 일인 듯싶었다.

 

가야산 호랑이라고 알려진 성철 스님께서 방장으로 계셨던 곳이기에 더욱 정감이 갔다. 가야산 산행을 마친 후 방문해서인지 해인사는 가야산과 한 몸처럼 느껴졌다. 등산로와 사찰이 연결되어 있어 가야산과 해인사는 서로 구분이 없었다. 10월 중순 올해는 유난히 여름이 길고 가물어 예전같은 아름다운 단풍은 구경하지 못했지만 시간을 내어 해인사를 방문하는 기회가 되어 무척 의미가 있었다. 우리 일행 중 해인사를 처음 방문하는 사람도 있어 의미는 한층 배가 되었다. 전각들 사이에 국화화분을 배치해 사찰 전체가 환한 분위기가 느껴졌다. 전각들이 많아 해인사를 천천히 제대로 둘러보려면 1, 2일은 소요되지 않을까 싶었다.

 

해인사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대적광전 건물 전면의 큰 앞마당에 놓인 짙은 분홍색 국화가 마치 열병을 준비하는 군인처럼 너른 마당을 차지하고 석등과 삼층석탑이 함께 중심공간을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2단 높이로 자리 잡은 대적광전은 사열하는 장수의 기개를 느끼게 할 정도로 우뚝했다. 대가람에 걸 맞는 크기로 건축해서인지 크기는 컸지만 자신을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다.

 

대비로전에 있는 9세기(883)에 조성된 국내 최고의 목조 비로자나불은 꼭 알현하고 가야한다. 오래된 목조불이지만 어제 만든 듯 새로웠다. 천 년 이상을 큰 훼손 없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느낌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세월의 켜를 안고 험난한 세상살이의 흔적들을 보듬은 채 오늘도 어제와 같이 표정하나 바꾸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부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불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극명하다. 아무리 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이라도 상상력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마음을 깨닫는 종교인 불교조차도 깨달음을 추구하는 대상이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인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 천주교 또한 다름 아니다. 다양한 전각들마다 나름 의미를 지녔고 가진 역할이 있지만 크게 보면 불교 수행의 핵심은 깨달음에 있다. 모든 것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과정에 조금 필요한 것들이다. 인간은 먹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그에 따른 부속건물과 수행을 위해 필요한 공간들일 뿐이다.

 

(2021.10)

 

 

인생의 문제는 자신이 성숙해져서 문제가 문제 되지 않을 때 풀어지는 것이다

(박원자, 혜암평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