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2) 532
작은 절, 도림사
도림사는 자리 잡은 터가 좋았다. 사찰 뒤로 병풍 같이 드리운 백원산(524m)과 식산(594m)의 능선이 부드러웠다. 높지 않은 백원산 국사봉 기슭이지만 자리 잡은 터는 상주 벌판을 내려다보는 높은 터여서 조망감이 아주 좋았다. 도림사 전면으로 사찰에서 크게 홍보하고 있는 와불 형태의 산세가 한 눈에 들어왔다. 처음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산세가 누워있는 부처를 닮았다. 사실 누워있는 와불 형태의 산세를 지닌 산은 매우 드물기에 신기하기도 하고 기묘한 느낌을 주었다.
도림사에서 부르기를 서방 정토 세계를 관장하는 아미타부처님이라고 했다. 대웅전 옆, 삼성각이 있는 건물 2층에 있는 작은 방에 들어서면 전면 창을 크게 만들어 놓아 앉아서도 누워있는 아미타부처를 볼 수 있도록 해 이곳을 바라보며 절하고 기도를 올릴 수 있도록 잘 꾸며 놓았다. 잠시 앉아만 있어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간절히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하나 이상은 들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내문에 이르길 조용히 앉아 잠시 묵념 기도하면 한 가지 소원은 꼭 이루어 준다고 했다. 아늑한 느낌이 드는 기도처로 이만한 곳이 없어 보였다.
도림사 입구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커다란 장독대 조형물이 시선을 끌었다. 장(醬)이라는 글자가 선명했다. 주차장 위로 수많은 장독대가 나타났다. 개략 600여 개 정도 라고 하는데 생김새가 참으로 다양했다. 오래전부터 사찰에서 장을 담았던 항아리들로 길게는 수 백 년, 짧게는 수 십 년이나 된 아주 오래된 항아리들 이라고 했다. 숨 쉬는 장독이어서 인지 된장, 간장 냄새를 풍기고 있었지만 짙은 향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곤 했다. 산기슭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순환 덕분인 듯했다.
일주문 대신 장독 조형물과 수많은 장독들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었다. 장류를 판매한 수익으로 화재로 전소된 대웅전 복원불사를 해냈다는 이야기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복원 불사를 하기 위해서는 매년 얼마나 많은 양의 장을 담가야 했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전통 된장, 고추장, 간장 외에도 식초와 매실 등 다양한 발효 액상차도 종무소에서 팔고 있었다. 1kg에 3만원 하는 된장 가격은 처음에는 다소 비싸다고 여겼지만 제조하는 방법을 듣고 나서는 비싸다는 생각이 쏙 들어갔다. 서울에서 왔다고 하니 5천원이나 깍아 주었다. 법연 이라는 이름이 적힌 명함도 건네 주셨다. 법명 옆에 작은 글씨로 두손 모음이라고 적은 글자가 가슴에 박혔다. 모든 일에 세심한 정성을 쏟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이가 어느 정도 들어가니 새삼 어른의 품격이란 단어가 자주 떠오른다. 진즉에 생각해서 내면에 새겨야 함에도 60이 넘어서야 비로소 떠오르는 것은 세상살이에서 조금은 벗어난 나이가 된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지 않나 싶다. 더불어 이제야 철이 드는 것이 아닌가도 싶었다. 어른이란 자기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와 무거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거부하지 않은 채 묵묵히 견뎌내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싶지 않은 일이다. 인간은 본래 욕망 덩어리인데 욕망을 내려놓고 주어지는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묵묵히 견뎌내는 일은 산전수전을 모두 겪은 사람들에게만 어느 정도 가능한 일이지 싶다. 결국 삶의 오랜 경험이 한 몫을 할 수 밖에 없지만 더 나이 들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좋은 어른이 되겠다는 서원이라도 해야 젊은 세대에게 욕은 먹지 않을까 싶다. 존경까지 바라는 것은 지금 세상에서는 가당치도 않지만 그래도 그런 각오와 자세로 살아가야 제대로 된 어른이라고 조금은 인정해주지 않을까 싶다.
(2023.10)
꿈은 이루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만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리고 간절히 바라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단 그 간절함은 분명하지 않으면 안 된다(이나모리 가즈오, 왜 일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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