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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영동 1) 546 월류봉(月留峰)

(영동 1)  546

 

월류봉(月留峰)

 

국토의 정중앙을 자처하는 영동은 옥천과 한 몸이다. 중부 내륙의 맹주를 자처하는 영동과 옥천은 그동안 강원도를 비롯한 남해안, 서해안의 지명도 있는 고장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최근 들어 국토에 대한 관심과 지자체의 다양한 노력으로 인해 점차 이름을 서서히 알려나가고 있는 중이다. 정지용의 고향 옥천은 나름 시인의 지명도로 인해 그나마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하지만 영동은 백두대간의 고장이라는 지명도외에는 위치하고 있는 지형적 특성으로 인해 아직은 미답지와도 같은 존재로 남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했다.

 

우리나라 국토 여행을 선호하는 나 조차도 백두대간 종주 기간외에는 거의 찾지 않았던 곳으로 60 중반에 이르러서야 처음 방문하게 되었다. 거의 20여 년 전 명상수련을 목적으로 이곳에 위치하고 있는 모 단체의 명상 수련원을 12일로 찾은 것과 백두대간 산행을 위해 찾은 것 외에는 이 고장을 제대로 살펴 보지 못했다. 이 또한 시절인연이라 생각하고 넘어 가지만 우리 국토에 대한 애정이 좀 더 있었더라면 벌써 이전에 몇 번은 다녀갔어야 마땅하지 않았나 싶었다.

 

영동고장 첫 방문지로 월류봉을 찾았다. 한천 8경으로 유명한 이곳은 영동 지방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다. 영동지방은 금강을 중심으로 양산 8경과 금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한천 8경이 대표적인 명승지로 알려져 있다. 한천 8경의 중심은 월류봉이고 월류봉 주변으로 한천 8경이 펼쳐져 있다고 보면 된다. 달이 머무는 봉우리라는 이름 뜻을 지닌 월류봉은 높이는 400m 대에 불과 했지만 월류봉 광장 주차장에서 바라본 느낌은 거대한 장벽을 연상케 하였고 하늘을 찌르는 기상은 주변을 압도 하고 있었다.

 

400m 대의 산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웅장했고 영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5개의 봉우리가 능선을 이룬 모습은 참으로 장대한 기운이 느껴졌다. 금강 상류에 해당하는 초강천과 어우러져 선경을 연출했다. 그리 높지 않은 경치좋은 곳에 자리잡은 월류정은 거대한 월류봉을 배경으로 단연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고고한 학이 둥지를 틀고 월류봉 광장 일대를 내려보고 있는 것 같은 모습 또한 단연 도드라졌다. 이런 멋진 곳이 영동에 있었음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 후회가 될 정도였다.

 

우암 송시열이 경치에 반해 월류봉을 잘 바라다 보이는 곳에 한천정사를 짓고 머무르며 삶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지인들과 시를 짓고 풍류를 즐겼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남은 여생을 이곳에 머물며 평생을 보냈다면 기사환국(己巳換局)의 늪에서 벗어나 존경 받는 대선비로 인생을 마무리 할 수 있지 않았을 까 싶었다. 정치의 세계는 한편 화려해 보이지만 이전투구와 권모술수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입신양명(立身揚名)을 향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는 태생적인 한계가 한편으론 이해가 되었다. 삶의 가치관을 어디에 두느냐가 삶의 결과를 좌우한다는 진리는 예나 지금이나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비숫한 듯했다.

 

월류봉은 5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으로 월류봉 광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들머리와 날머리가 있어 산행 하기 용이해 보였다. 모든 봉우리를 섭렵하는 일주 산행은 개략 3시간 반 정도면 마칠 수 있다고 하고 월류봉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풍광 역시 대단하다고 하니 시간이 있으신 분은 도전해 보시길 권유 드린다. 나도 2024년 가을철에 월류봉 일주 산행과 더불어 천태산 영국사의 천 년 넘은 은행나무도 꼭 보리라 속으로 다짐 했다. 영동이라는 고장에 숨어 았는 보석같은 산과 문화 유산 그리고 자연을 답사하는 일이 또 다른 흥미진진한 숙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2023.12) (2024.5)

 

*같은 곳을 최근에 한 번 더 다녀왔기에 사진은 최근 사진을 올려드립니다.

 

실패한 곳으로 돌아가고 성공한 곳은 떠나라(카잔차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