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3) 548
반야사(般若寺)
반야사는 월류봉 광장에서 멀지 않았다. 자동차로 5분 정도 소요될 정도로 가까웠다. 두 발로 걸으면 2시간 소요되는 거리를 차로 5분 만에 갈 수 있어 타임머신을 타고 가는 기분이 들었다. 가는 길은 마치 백화산의 중심을 향해 차가 내달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묘했다. 어디를 가나 대한민국은 산들의 천국이다. 높은 산들도 있지만 이곳 영동은 대체로 높은 산 보다는 중간 높이(400-900m)의 산들로 이루어져 있다. 다만 백두대간의 고장답게 겹겹이 산들로 둘러 싸여 있는 특징을 지녔다.
반야사는 평지사찰이다. 금강 상류에 해당하는 제법 폭이 넓고 물돌이 형식으로 돌아가는 석천 변을 끼고 뒤로는 중후한 느낌의 산이, 전면에는 수려한 능선을 지닌 백화산이 잘 조망되는 위치에 자리 잡았다. 지형도를 보니 앉은 터가 절묘했다. 지금이야 도로 사정이 좋아 접근이 편리하지만 오랜 옛날에는 결코 접근하기 쉽지 않은 터로 보였다. 아마도 6.25 동란 중에도 사찰이 이런 곳에 있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지 않았을 까 싶을 정도로 속세에서 벗어나 있는 장소로 느껴졌다.
좋은 터는 스스로를 보호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하는 데 반야사 자리 잡은 터가 그런 곳으로 여겨졌다. 천 3백 년을 이어오고 있는 역사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했다. 터는 크지 않아 건물들의 배치가 어딘지 옹색하게 느껴졌지만 주변 풍광만큼은 여느 사찰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경관과 중후한 품격을 지녔다. 이런 곳에서의 템플 스테이는 마음을 내려놓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장소로는 으뜸이지 않을까 싶었다. 언젠가 템플 스테이를 해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우러나왔다. 사찰이 사람들로 크게 붐비지 않은 점도 마음을 동하게 했다.
터가 크지 않기에 전각들도 그리 많지 않아 어딘지 푸근한 느낌이 들었고 새로 신축한 공양간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 핵심공간이 있는 공간을 방패막이 형태로 막아주어 대웅전 있는 앞마당이 안온했다. 대웅전 앞마당을 중심으로 나란히 서있는 전각들이 형제애를 자랑하는 모습으로 나란히 뒷산을 배경으로 위치해 공간이 정리된 느낌을 주었다. 주요 전각 모두 백화산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배치 한 점이 탁월했다.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배치가 왜 사람으로 하여금 안온한 느낌을 주는지가 극명하게 느껴졌다.
대웅전이 없었을 때 대웅전 역할을 대신 했던 극락전 앞 500년 넘은 수령의 배롱나무 두 그루가 반야사의 수호신을 자처하는 듯 건강한 모습으로 당당했다. 연분홍 꽃을 틔우는 늦은 봄부터 늦여름까지 반야사는 배롱나무 꽃을 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이 찾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단풍이 주변을 물들이는 가을이면 석천 변 계곡과 백화산이 만들어내는 천상의 풍경으로 찾는 사람들을 매료시키지 않을까 했다. 사시사철 모든 계절에 많은 사람이 찾는 사찰이지 않을까 싶었다.
(2024.12)
삶에서 가장 높은 경지는 만족할 줄 아는 것이다(법정, 일기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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