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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영동 4) 549 문수전(文殊殿)

(영동 4) 549

 

문수전(文殊殿)

 

반야사를 지금에서야 찾았지만 늦게나마 찾게 된 시절인연에 감사했다. 반야사에 오시면 꼭 보고 가야 하는 전각이 문수전이다. 대웅전 후면 망경대의 깍아 지른 듯한 곳에 절묘하게 위치해 접근하려면 조금은 다리품을 팔아야 하지만 문수전에 올라서면 힘든 순간을 잊고 누구나 와하는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절묘한 위치에 자리 잡았다. 어찌 보면 위태롭게 느껴질 정도의 압박감이 있어 오래 머물 수 없는 단점도 있지만 이곳에서의 풍광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물돌이 형식으로 휘돌아가는 물줄기와 주변을 감싸고 있는 산의 조화가 그야말로 매혹적이고 환상적이었다.

 

눈 쌓인 겨울이나 화려한 단풍이 계곡을 수놓는 가을 풍광은 화려함을 넘어 사람으로 하여금 울컥한 감정을 느끼게 할 정도로 탁월할 듯했다. 자연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아름다워 사람의 본성과 동기감응을 일으킬 수 있는 곳이 이런 곳이 아닐까 싶었다. 방석을 깔고 산 멍을 하며 1, 2시간만 앉아 있어도 명상이 되고 힐링이 될 정도로 대단한 풍광을 지녔다. 세조 대왕이 피부병으로 고생하다 이곳 문수전이 있는 망경대 아래 계곡 물(영천)에서 목욕을 하고 나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곳이어서 더욱 신비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반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로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 도량으로 자리 매김 되어 있는 사찰이라고 했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720(성덕왕 19) 의상(義湘)대사의 십대제자 중 한 사람인 상원(相源)대사가 창건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라고 한다. 사찰 이름을 반야사(般若寺)라고 한 것은 사찰 주위에 지혜를 상징하는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신앙 때문이며, 문수보살의 지혜는 불교에서 곧 반야를 상징하므로 반야사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반야란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만물의 참다운 실상을 깨닫고 온갖 분별과 망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앎으로써 성불에 이르게 되는 마음의 작용을 이른다고 했다. 머리로는 이해되었지만 마음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경지여서 불교의 높은 벽이 실감되었다. 깨달음에 도달 하려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한 마음으로 정진해야만 가능한 일이지 않을까 했다.

 

문수전 가는 방법은 두 가지로 하나는 템플 스테이 전각이 있는 좌측 길로 들어서 하천을 따라 가는 길과 대웅전 뒷길인 완만한 능선을 따라 20여 분정도 오르는 길이다. 경치는 템플 스테이 전각 좌측 길이 좋은 반면 10여분 정도 가파른 능선 길을 올라야 하는 어려움이 있으니 노약자분들은 대웅전 뒷길인 능선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극락전 앞 500여 년 된 배롱 나무 앞에 있는 삼층 석탑도 유심히 살펴보셨으면 한다. 미적 아름다움은 여타의 사찰에 있는 삼층석탑에 비해 못 미치지만 백제, 신라 석탑의 양식을 절충해 만든 고려시대의 석탑 형식을 지녔기에 석탑연구에 있어 매우 귀중한 유산이라고 한다. 더불어 오래되었고 보존 상태도 좋아 보물로 지정 된 듯했다.

 

반야사가 끼고 있는 하천 이름은 석천(石川)이라고 했다. 이름이 특이했다. 안내문에 이르길 하천 바닥이 대부분 암석으로 이루어져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속리산에서 발원하여 흐르다 반야사를 지나 월류봉이 있는 곳에서 민주지산에서 발원한 초강천과 합류하여 금강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금강 상류에 해당되어 그런지 물이 무척 맑고 깨끗했다.

 

쉼이 있는 지혜도량을 추구하고 있는 반야사는 젊은 주지 스님이 남다른 의욕을 가지고 템플 스테이를 통해 공부와 과외 등으로 심신이 피로하고 찌든 청소년들이 좀 더 자주 찾아 편히 쉬다가기를 바라는 염원이 큰 사찰이다. 1,300 여 년의 더께가 쌓인 반야사와 역시 천 년 사찰을 자랑하는 천태산 영국사는 충북 영동의 양대 사찰로 자리 잡고 크게 드러나지 않은 채 각 자의 위치에서 고고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2023.12)

 

진실한 말에는 꾸밈이 없고 꾸미는 말에는 진실이 없다(박웅현, 다시 책은 도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