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2) 545
객주 문학관 2
객주 문학관의 내부 전시관은 생각보다 크지 않아 다 둘러보는데 1시간이면 충분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려면 2시간은 할애 해야 한다. 길위의 작가라고 불리는 김주영 작가는 장편 대하소설 객주를 쓰기위해 5년 동안 전국의 200여 개의 시골장터를 답사하며 자료를 모았다고 한다. 19세기 말 보부상의 행적을 찾는다는 것은 지난한 일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떠돌이 같은 삶을 영위하며 장사를 하던 보부상들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기에 수 많은 문헌을 뒤지고 보부상의 행적이 닿았던 곳의 많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분적으로 자료를 채굴하다시피 모으고 시골 장터를 답사하며 그 당시의 보부상의 삶을 유추해보는 것은 아무리 작가라해도 상상력의 빈곤을 경험하지 않았을 까 싶었다.
김주영작가 스스로 좋은 글을 쓰겠다는 간절함과 집념 그리고 그의 타고난 성실함과 꼼꼼함이 뒷받침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했다. 작가는 자기가 쓴 글은 결국 자신의 자서전이자 반성문이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면서 그런 방향으로 평생을 일관되게 걸어 왔다고 자신을 평했다. 그는 작가 개인의 유명세를 추구하기보다는 오직 작품의 진실성에 매달리며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말한다는 가치관에 투철한 작가로 인정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객주는 서울 일간지에 1979년 6월부터 1984년 2월 까지 무려 4년 9개월 동안 1465회(책9권)에 걸쳐 연재하였다고 한다. 전시관을 돌아보며 작가의 삶과 소설가의 역할을 떠올려보았다. 이야기꾼인 소설가라는 직업이 없었다면 이런 이야기들은 구전 혹은 조각된 사실로만 전해져 한 시대를 풍미했고 그 시대의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역사가 잊혀진 채 사라지는 아픔을 맞이 하게 되지 않았을까 했다.
좀 더 나아가서 대한민국의 역사 전체를 소설가들의 힘을 빌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풀어 낸다면 얼마나 재미있고 유익하며 소중한 살아 있는 역사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유쾌한 상상을 해본다. 객주 문학관을 통하여 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한 단편을 살펴보는 기회가 되었고 다시 한 번 객주 대하소설을 읽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전시관내 한 벽면을 장식한 작가의 고백이 울림이 있었다. “철부지 어린 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생에서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 부끄러움을 두지 않았던 말은 오직 ”엄마“ 그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고향을 떠난 이후 터특했다고 자부 했었던 사랑, 맹세, 배려, 겸손과 같은 눈부신 형용과 고결한 수사들은 속임수와 허물을 은폐하기 위한 허세에 불과했다”라는 말은 바로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80 넘은 작가의 고백을 통해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유익함이 있었다. 나를 무장해제하고 알량한 자존심을 내려 놓는 일이 살아 있는 동안에 가능할지 아득하기만 했다.
우리가 방문하기 20분 전에 작가가 여기에 머물다가 서울로 귀경하셨다는 이야기를 해설사분에게서 들었다. 조금 일찍 당도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작가는 서울 송파에서 사시는데 3시간 남짓 걸려 이곳을 자주 다녀간다고 했다. 80이 넘은 고령이어서 앞으로는 자주 다니기에는 어렵지 않을까 했다. 살아 생전에 얼굴 한 번 뵙고 객주를 쓰게 된 배경과 객주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었고 소설가의 삶은 어떤 것인지도 알고 싶었다.
작가의 고향이고 자신의 문학관이 이곳에 있기에 아직은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자주 찾게 되겠지만 시간은 조금씩 제약을 가할 것이다. 문학관에서 멀리 바라다보이는 청송교도소가 장난감처럼 작게 큰 산의 품속에 잠겨 있었다. 물 좋고 산 좋은 이곳에 최고 흉악범들을 모아 놓은 청송 교도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산속의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모습이 안쓰럽게 느껴졌다.(청송교도소 이름은 지금은 경북 북부 제2교도소라고 명칭이 변경되었고 다른 교정 시설도 함께 들어서 있다고 했다)
(2023.11)
인문이란 자유롭게 사는 기술이다(이동규, 생각의 차이가 일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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