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15) 560
김창만 고택 1(국가 민속 문화재 142호)
안채 전경
안 사랑채
우리나라 4대강의 하나인 금강이 휘돌아 흐르고 백두대간의 걸출한 산줄기가 용틀임치며 백두산을 향해 뻗어 나가는 영동지방은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답게 수려한 아름다움을 자랑했다.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있는 고택은 한국인의 정서를 대변하며 홀로 도드라졌다. 젊은 시절에는 한양 도읍에서 임금을 도와 나랏일에 힘쓰다 퇴직후 낙향하여 자신을 되돌아보며 삶을 반추하는 생활에 임하는 것이 옛 선비들의 보편적인 일상이었다.
영동군 양강면 괴목리의 김참판 고택은 현 소유주의 5대 조부인 김기현이 예조참판을 지내다 낙향하여 가옥을 구입, 이주한 이후 처음에는 영동 김선조가옥으로 불리었으나 2007년 이후 영동 김참판 고택으로 명칭을 변경했다고 한다. 보통은 김참판댁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최초 1769년(영조 45)에 건립되었으나 고종때 크게 중수하여 조선말기의 한옥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한옥이다. 사대부가에서 쓰는 ㄷ자 구조 형태를 기본으로 하고 있지만 일반적인 살림집 한옥에서 볼 수 없는 지붕형태를 지녔고 건축의장 기법이 탁월한 한옥으로 평가받고 있는 집이다. 사람마다 생김새가 틀리고 성격도 다르듯이 한국의 전통 살림집인 한옥도 주인의 개성을 닮아 한 채도 똑같은 것이 없어 살림집인 한옥을 답사하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유난히도 괴목이 많은 동네라고 해서 이름 붙은 괴목리는 마을 뒷산인 작은 야산과 천마산 일부가 마을을 둘러싸고 있고 마을 앞으로 영동천이 흐르는 전형적인 배산임수형 마을이다. 양택 명당이 되기 위해서는 선조들은 배산임수의 터를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여겼다.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터가 가장 좋은 터임을 오랜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람도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어머니의 품과 같은 느낌을 주는 배산임수의 터를 찾으려고 노력한 선조들의 지혜는 수많은 시행착오의 결과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 아울러 살림집의 기본은 24시간 머무는 곳이기에 생활에 불편함이 없어야 하고 특히 잠자리가 중요하다. 숙면을 통해 활기찬 삶을 도모해야 사는 보람도 느끼고 살아가는 의미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그 당시의 생활상과 삶의 모든 지혜가 녹아 있고 한국인의 정서가 오롯이 배어 있는 살림집 한옥은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물질적, 정신적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래전 시골집에서 살며 불편했던 기억으로 한옥을 경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과정을 거쳤기에 오늘날의 우리가 있고 지금의 문명이 있는 것임을 숭고한 마음으로 살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크지 않은 괴목리 마을 가운데 위치한 김참판 고택은 지금은 영동군에서 관리하고 있지만 사람은 살지 않고 있어 누구나 관람 할 수 있다. 대문은 굳게 잠겨 있지만 옆을 통해 안으로 들어 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수시로 손보지 않으면 시간이 갈수록 무너지고 쓰러져 점점 폐가로 변해가기 마련인데 김참판 고택도 그럴 운명에 처해 있는 듯해 안타까웠다.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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