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 16) 561
김창만 고택 2 (국가 민속 문화재 142호)
안채와 안 사랑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되어 그나마 최소한으로 관리는 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다행이다 싶었다. 일반적인 살림집 배치와 형태는 비슷하였으나 안채와 별당 형식의 안 사랑채는 최초 건립시에 지어진 건축물이고 그 외는 20세기 들어서 지은 건축물이라고 한다. 안채 바로 맞은 편에 있었던 사랑채는 지금은 기단만 남아 있어 아쉬웠다. 안채와 안 사랑채는 그대로 인데 사랑채만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추측컨대 세월이 지나 사랑채를 두 곳이나 둘 필요성이 없어졌기에 그리하지 않았나 싶다. 아울러 안채 정면에 위치한 사랑채로 인해 안채가 답답한 공간으로 변해 공기의 순환도 문제가 있고 그런 환경으로 인해 안채에 거주하는 안주인의 기운이 쇠해지는 영향도 고려하지 않았을 까 싶었다.
지금처럼 안채 앞이 훤하고 양지바른 마당을 늘 보고 있는 형태가 살림집으로는 제격이다 싶었다. 결국 살림집은 기거하는 사람의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논리가 가장 중요한 point 임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했다. 고택의 배치는 집 터의 규모를 고려해 짜임새 있게 건축물을 앉혔고 건축물간 이격 거리도 적절해 전반적으로 배치에 신경을 많이 쓴 집으로 보였다. 남서향 배치인 안채의 지붕형태와 입면이 독특했다.
안채의 형태는 몸체와 양 날개(?)를 가진 ㄷ자집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을 하고 있는데, 양 날개를 동일한 형태로 처리하지 않고 집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오른쪽 날개의 입면은 팔작지붕으로 마감하고 왼쪽날개의 입면은 가구를 드러내 보이게 박공으로 처리한 점이 도드라졌다. 몸체를 가운데 둔 좌우 대칭의 안정감을 버리고 입면을 달리한 의도가 무척 신선하게 느껴졌다.
대개 자연이 그러하듯이 대칭 형태는 아무래도 인위적인 느낌이 나기에 그점을 고려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칭으로 했으면 자칫 식상할 뻔한 건물이 비대칭으로 인해 색다름이 느껴졌고 한층 돋보였다. 과감한 시도를 통해 자신만의 살림집을 만든 건축주의 창의적 발상이 놀라웠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왼쪽 날개부분의 앞면 한칸은 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부엌을 들였는데, 방문 앞에 놓여 진 쪽마루의 초석과 몸체에 해당하는 방문 앞의 툇마루 초석이 서로 달랐다.
쪽마루 초석은 덤벙주초를 사용하였는데, 여기서 ‘덤벙주초’란 주춧돌이 될만한 돌을 가공하지 않고 생긴 그대로 놓아 주춧돌로 삼는 것을 말한다. 그 위에 기둥을 얹는데 울퉁불퉁한 이 초석의 윗면에 기둥을 그냥 얹지 않고, 기둥으로 쓸 나무의 밑둥을 그 돌의 생김새에 맞게 깍고 파내어 주춧돌과 기둥 밑둥 사이에 틈새가 없도록 짜 맞추는 기법을 사용했다. 이를 그렝이질이라는 용어로 표현 한다는 것을 알아두셨으면 한다. 선조분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기법이다.
더불어 흰 개미의 습격을 방지하고 습기가 스며들어 기둥 밑둥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초석에 닿는 목재 밑부분을 일부 파서 소금과 숯을 넣어 마감하는 데 이는 집을 받치는 주요 기둥 에 적용하고 쪽마루의 경우는 그렝이질 정도로만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고 보면 된다. 그렝이질의 중요성은 기둥역할을 하는 목재를 초석과 틈새를 허용하지 않는 고순도의 접합으로 기둥과 초석이 한몸을 형성, 웬만한 충격에도 떨어지지 않는 마찰력을 갖는다.
몸체에 해당하는 툇마루의 초석은 주초석으로 사대부가의 품격이 드러나야 하기에 주초석을 이쁜 형태로 하지 않았나 싶다. 툇마루 주초석을 쪽마루 초석 형태로 했을 경우와는 격이 다르지 않을까 싶다. 살림집이므로 주인의 생각에 따라 달리 했다고 보면 될 듯했다. 안 사랑채의 초석과 안채의 초석도 조금씩 달라 건축물을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 외에도 방창과 창문의 형태와 크기도 전반적으로 비례미가 탁월해 건축물의 품격이 느껴졌다. 한마디로 설계와 시공에 정성을 쏟은 고택이지 않을까 싶다.
안 사랑채는 안채와 대비 되었다. 규모는 안채에 비해 작았지만 품격은 안채와 비교해서 뒤지지 않았다. 별당 형식이어서 규모를 작게 한 듯했다. 안채와 정면으로 마주 하지 않게 설계했고 창문과 방창 그리고 쪽마루와 툇마루 모두 건축물 규모에 맞게 크기와 형태를 고려해 전반적으로 잘 지은 건축물로 느껴졌다. 안채와 안 사랑채는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를 돋보이도록 했다. 여성 공간과 남성 공간 구획에 무척 신경을 쓴 듯했다.
250년 전에 지은 목조 살림집이 아직까지 멀쩡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현대인의 눈으로 보면 시공상태가 어설프게 느껴질 수 있으나 긴 세월의 흐름이 배어 있다는 사실을 감안 해서 보아야 제대로 살필 수 있다. 조금 아쉬운 점은 사람이 직접 거주하며 보존 할 수 있도록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 까 싶었다. 앞으로도 몇 백년 이상 오랜 세월을 견뎌내려면 리모델링은 필수이고 또한 사람이 거주하며 관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살림집 한옥을 포함 우리의 오래된 전통건축물은 그 시대의 생활상(시대상)과 우리 선조들의 정서가 오롯이 배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보존하고 잘 관리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이 크게 부각 되었으면 했다.
김참판 고택외에도 성장환 고택, 구당고택, 소석 고택도 가까운 거리에 있으니 함께 둘러보시길 권해 드리고 싶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개성을 지닌 고택을 둘러보며 삶의 다양성을 새기고 창의성 증진(?)의 기회로 삼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까 싶다. 김참판 고택이 있는 괴목리(槐木里) 마을은 옛날 3.1 운동 나던 해 200여명의 마을 주민이 괴목리 주재소 앞에 모여 일제에 거세게 항의 하다가 8명이 옥고를 치른 기개(氣槪)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일제에 항거한 정신이 아직도 도처에 살아 있는 듯했다. 물 맑고 수려한 산세를 자랑하는 고장 영동은 난계 박연 선생과 더불어 오랫동안 내 기억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을 듯했다.
(2023.12)
덤벙주초(그렝이질 주초)
안 사랑채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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