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16) 563
울산바위
설악동 입구에서 계조암까지 1시간, 계조암부터 울산바위 정상까지 꼬박 1시간 정도 걸린다. 울산바위가 바로 지척에 있는 모습이지만 이곳부터는 계속 오르막 등산길을 걸어야한다. 새해를 맞아서인지 제법 많은 분들이 이곳을 찾았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씩씩하게들 오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젊은 MZ세대 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복장은 부실(?)했지만 힘든 가운데도 포기하지 않고 오르는 모습이 대견했다. 힘든 여자 친구를 잘 리드하며 오르고 있는 남자 친구의 표정이 밝았다.
울산바위 입구 가장 힘든 철 계단길이 시작되었지만 오르는 내내 보여주는 멋진 조망으로 힘든 줄 몰랐고 중간 중간 잠시 쉬어가며 눈부신 풍광을 감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멀리 대청봉과 마등령이 손에 잡힐 듯 가까웠다. 북사면에 내린 눈을 보듬고 있는 산들의 모습이 거친 자연과 동화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드러냈다. 알몸을 모두 자연에 맡긴 채 다가 올 봄을 기다리며 숨죽이며 자신의 체력을 비축하고 있었다.
울산바위 정상은 사람이 많았지만 혼잡하지는 않았다. 이곳에 처음 온 회원의 밝은 표정에서 우리 산악회의 미래를 보았다. 가시거리가 좋아 멀리 금강산도 보이고 고성 들판의 건축물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달리는 차들도 또렷하게 보일 정도로 오늘은 최고의 가시거리를 자랑했다. 오늘 이 곳에 온 행운에 감사했다. 맑고 쾌청 포근하면서도 바람 없는 날은 일 년 중에도 며칠 되지 않는 데 그런 행운이 새해에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사실에 감사한 마음이 일었다.
삼대가 덕을 쌓아야 보고 경험 할 수 있는 풍광을 오늘 울산바위에서 원 없이 바라보면서 2024년 우리 산악회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나아가서는 세계인들 모두 평화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 갈 수 있게 되기를 창조주께 기도 드렸다.
일망무제의 풍광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었고 그동안 쌓인 모든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주었다. 침침했던 눈의 동공이 확장되며 맑고 청량한 기운이 눈과 머릿속으로 쑥 들어왔다. 머릿속과 눈이 시원해짐과 동시에 평화로움이 밀려왔다. 반나절정도 이곳에 머물며 산 멍을 하고 싶을 정도로 조망이 탁월했다. 속세에서 상처 받았던 일들이 티끌처럼 여겨졌다. 마음이 확장되어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이런 확장된 마음이 오래도록 유지되기를 간구했다. 일행들 각 자 좋아하는 풍경을 마음껏 모바일 폰에 담았다. 힘든 일이 있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 한 번씩 꺼내보면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다.
한 동안 머물며 설악산이 내어주는 아름다운 풍광을 마음껏 만끽하고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하산 길에 올랐다. 영상의 기온으로 변한 날씨로 인해 양지바른 곳의 등산로에는 눈이 녹기 시작했다. 일행 들 모두 아이젠을 착용했지만 그래도 길이 미끄러워 조심해야 했다. 한대원이 계조암 거의 다 와서 벌렁 자빠졌다. 순간 웃음이 나왔지만 억지로 참고 상태를 챙기니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었다. 또 한 일행이 미끄러져 앞서가던 대원을 치고 넘어졌으나 다행히도 난간에 걸려 안전했다. 난간 줄이 없었으면 경사면으로 모두 미끌어져 상처를 입을 뻔 해 가슴을 쓸어내렸다. 물론 나무들이 막아 주었겠지만 그래도 작은 상처라도 나면 하산 길이 위험하기에 다행이다 싶었다.
겨울철 안전산행을 위해서는 아이젠과 스틱 모두 필요하다. 미끄럼 방지뿐만 아니라 두 개의 스틱을 통해 균형도 유지하고 무릎관절의 충격도 완화시킬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엄홍길 대장과 우리 산악회는 함께 도봉산 겨울 산행을 한 적이 있었다. 아이젠 없이 양쪽 스틱만을 이용하여 등산하는 엄대장의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히말라야에서 산행 하듯이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산행 하는 모습에서 마치 구도자의 자세가 느껴졌고 8천 미터대의 산행을 해본 사람만의 품격이 우러났다. 큰 산이나 작은 산을 대하는 태도가 같았다. 그 이후 산에 올 때마다 엄 대장을 떠올리며 산행 하는 습관이 생겼다.
계조암부터는 편안한 하산 길이다. 올라올 때 못 본 풍광을 감상하고 눈 싸인 계곡의 모습을 추가로 사진에 담았다. 모처럼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아 기뻤다. 하산 길에 5,6세로 보이는 아이들을 데리고 온 젊은 부부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계조암까지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몇 개 남은 쵸코 파이를 꺼내 하나씩 나눠주니 좋아라 했다. 기특하다고 하고 엄마, 아빠와 자주 이곳에 오라고 미소를 보내며 이야기 했다. 어릴 적 추억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지는 않겠지만 잠재의식 속에는 남아 어른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산을 자주 찾게 되지 않을까 싶다. 설악산이 주는 좋은 기운이 아이들에게도 전달되기를 기원했다.
영상의 온도로 탈바꿈한 날씨와 따뜻한 햇볕이 마음을 봄바람처럼 부풀게 했고 계곡의 눈들은 햇빛을 밤아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속초 앞 바다의 물고기들이 밤새 몰려와 이곳에 비늘을 털어 놓고 간듯했다. 참으로 오랜만에 찾은 설악의 품은 여전히 따뜻했고 포근했다. 대학에 들어와 1학년 첫 축제 때 축제에는 참석하지 않고 친구와 설악산을 찾은 것이 설악산과의 첫 인연이다. 그 당시 백담사를 거쳐 수렴동에서 1박하고 다음 날 새벽, 봉정암, 중청, 대청봉을 오른 후 설악동으로 이어지는 꼬박 12시간의 산행을 통해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무척 행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1978년 5월의 산행 기억이 46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설악산이 주는 좋은 기운 때문이 아닌가 싶다.
20년 전인 2004년에 시작한 백두대간 종주 시도 설악산 구간을 종주했을 때 역시 비슷한 인상을 받았고 안전사고 하나 없이 마무리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 가 싶었다. 설악산의 품에 안길 때마다 느끼는 행복한 감정이 삶에 청량제가 되고 마음을 늘 풍요롭게 해주고 있어 내게는 설악산이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이곳을 찾아 고향이 주는 풍요로움을 느끼고 있지만 산행을 그만두는 날까지 그런 인연을 지속하고 싶고 계속 되기를 속으로 기원했다. 오늘 하루도 안전 산행을 하게 해주신 창조주와 설악산 산신께 감사를 드렸다.
(2024.1)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야 한다. 가치 있는 삶은 현재를 사는 삶이다(정혜성,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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