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15) 562
울산바위 가는 길
2024년 신년 산행으로 참으로 오랜만에 울산바위를 찾았다. 얼마 전부터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날이 한동안 계속되다가 울산바위 찾아가는 날은 다행히도 기온이 올라 아침은 영하 3도 낮에는 영상의 날씨로 산행하기에 최적의 날씨를 보여주었다. 날씨도 쾌청해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푸른 청색으로 갈아입고 그동안 쌓인 눈과 다정한 눈 마침을 하고 있었다.
모처럼 표를 구입하지 않고 편하게 신흥사 일주문을 통과하는 느낌이 남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번 매표소에서 “왜 신흥사 땅을 밟고 지나가지 않는데 표를 구입해야 하느냐?” 하는 언쟁이 수시로 벌어지곤 했었는데 지금은 아주 평화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모처럼 설악산을 찾은 사람들 표정에서 행복한 모습이 읽혀졌다. 어린아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꽤 보였다. 어른들은 빨리 걷고자 하였으나 어린아이들은 길가에 쌓인 눈을 어루만지며 노느라 부모의 외침은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동심으로 울산바위 가는 길이 피안(彼岸)의 세계로 가는 길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청동 부처상이 입구의 너른 광장을 꽉 채우고 있었다. 빈 광장이 주는 힘을 간과한 거대한 청동 부처상이 부처님을 욕되게 하고 있는 듯했다. 욕망이 인간의 욕심으로 변질된 모습이지만 불완전한 인간이 하는 일이란 대개 그러하기에 못 본채 그냥 지나쳤다. 꼭 이 자리에 거대한 청동 부처상이 들어서야 했는지 여러 각도에서 묻고 고민했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깨달음에 이르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불교가 중생구제라는 해묵은 명제에 전도된 나머지 방법이 너무 노골적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신흥사와 흔들바위
오랜만에 찾은 눈 쌓인 신흥사(1647년 창건)는 사뭇 예전과 달랐다. 며칠 전 내린 눈으로 신흥사는 새로 태어난 모습으로 비쳐졌다. 보물로 지정된 극락보전과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좌상을 좀 더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건축물 규모와 전각의 수에 비해 자리 잡은 터는 옹색했으나 사찰을 둘러싸고 있는 설악의 산세가 이를 충분히 보완해주고 있었다. 한동안 일반인들에게 원성의 대상이었던 신흥사에도 평화의 봄이 왔는지 예전보다 찾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높은 담장이 속세와 내세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듯한 모습이 조금 불편했다. 담장이 없으면 속세와 좀 더 소통하는 사찰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었다.
흔들바위가 있는 계조암까지 가는 길이 그야말로 환상적인 풍광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복이 쌓인 눈을 그대로 머리에 이고 있는 계곡의 바위들이 천상의 장면을 연출했다. 발길 옮길 때마다 달라지는 풍광에 넋을 잃고 모바일 폰에 정성껏 사진을 담았다. 계곡의 멋진 풍경을 가능한 많이 사진에 담아내느라 운행속도가 지연되었으나 이런 장면은 좀처럼 다시 만날 수 없기에 정성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눈 덮인 등산길은 걷는 내내 우리를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게 했다. 대화 주제도 오직 자연과 산에 머물렀다. 속세의 일들은 어느 순간 머리와 입에서 사라졌다.
계조암 가는 길 우측으로 서어나무와 사람주나무가 자주 눈에 띄였다. 오래되고 잘 보존된 숲에 많이 자라는 서어나무는 껍질이 울퉁불퉁해 거칠은 남자의 근육미가 느껴진다고 하여 남자나무로 불리고 사람주나무는 껍질이 매끄럽고 가을 단풍은 부끄러워하는 여인의 얼굴빛과 닮았다고 해서 여자나무라는 별명이 있는 나무다. 사람이 지어낸 말이지만 나무 이름을 기억하는데 유익할 듯했다.
멀리 울산바위가 미소 지으며 어서 빨리 오라고 재촉하는 듯했다. 파란 하늘과 하얀 색 바위가 묘한 대조를 이루며 서로를 높여주고 있었다. 계조암 흔들바위를 오랜만에 보니 무척 반가웠다. 예전보다 훨씬 크기가 작아진 듯했다. 나이가 들어가니 사물이 작게 보이는 것은 무슨 현상인지? 가까이 다가가 힘차게 밀어 보았으니 꿈쩍도 하지 않았다. 미는 모습을 사진 찍어 가족 단톡방에 올리자 큰 아이가 병아리 바위 같다고 이야기 해 웃음이 빵 터졌다. 큰 아이 6살 때 이곳에 데리고 온 적이 있는데 그때는 엄청 큰 바위가 왜 이리 작아졌냐고 한마디 했다.
바위는 본디 그대로인데 사람만이 나이를 먹어 보이는 것이 달라진 사실이 믿기 어려운 듯했다. 기억은 그 당시에 느꼈던 것임을 알면서도 오늘 본 것과 같아야 한다는 어리석음이 우리의 본 모습처럼 느껴졌다. 흔들바위가 있는 이곳 계조암에 오면 필히 영험 있는 석조 부처님을 보고 가야한다. 굴 입구에 있는 감로수도 한 잔 마시고 다른 종교를 믿지 않는 사람은 절이라도 한 번 드리고 가야 이곳에 온 본전(?)은 건질 수 있다. 혹시 알랴. 영험 있는 석조 부처님께서 간절한 소원 하나쯤은 너끈히 들어주실지 ..
계조암(652년 창건)은 동굴로 조성된 암자이지만 기도가 잘 받아 기도도량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불교신자라면 필히 문안드리고 가시라고 권해 드리고 싶다. 울산바위의 기운이 이곳 계조암에 몰려 큰 기운을 내고 있다고 하니 이곳에서 명상을 한다면 강한 기운이 단전을 열고 임독맥 유통 까지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 기회가 주어지기를 마음속으로 염원했다.
(2024.1)
가치 있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성 구별 없이 모든 세대와 소통 할 수 있어야 한다
(정혜성, 가치 있게 나이 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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