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15) 566
팔영산의 공룡능선
팔영산 8봉인 적취봉 정상에 서자 사방으로 터진 막힘없는 조망이 황홀했다. 뿌연 해무는 있었지만 다도해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 눈에 다가왔다. 마치 선경에 가까웠다. 남쪽 방향으로 3.5㎞ 길이의 방조제와 방조제가 만들어 낸 해창 만 간척지가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다가왔다. 갯벌을 광활한 농경지로 만든 것은 좋았지만 갯벌이 사라진 아픔은 또 다른 환경 재앙을 잉태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 쌀이 남아돈다고 하는데 간척지가 자꾸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미래 식량 부족을 대비한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을 듯했다.
8봉인 적취봉에서 1봉인 유영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이 마치 공룡의 등줄기처럼 꿈틀 거렸다. 작년에 올랐던 해남 달마산과 많이 닮았다. 바위 색깔과 산 정상에서 바라보이는 다도해 풍광도 흡사 했다. 남도의 산들은 다른 듯 비슷했고 서로 형제, 자매처럼 닮았다. 7봉인 칠성봉은 무난했으나 7봉에서 6봉인 두류봉 가는 길이 수직 절벽 능선이어서 제법 고소 공포증을 느끼게 할 정도로 무척 가팔랐다. 3년 전부터 팔영산을 맴돌던 산린이를 자처하는 친구가 뒤로 처지며 잠시 포기할 마음을 비쳤다.
함께하면 위험하지 않다고 거들며 끝까지 함께 하기를 조용히 강권하자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도전했다. 공포심을 누르고 결국은 종주에 성공한 친구에게 힘찬 박수를 보내고 싶다. 6봉 이후로는 크게 어려운 구간은 없었고 5봉 이후로는 봉우리들이 서로 아주 가까이 있어 산행에 속도가 났다. 홀수 봉우리에서만 단체 사진을 찍는 것으로 하니 운행 속도가 빨랐다. 산린이를 자처하는 친구가 긴장이 되어서인지 걷는 내내 연신 물을 들이켰다.
나중에 본인이 가져온 물이 다 떨어지자 아주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뒤따른 친구가 자기가 가져온 여분의 물을 한 병 건네는 순간, 무척 감동한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그 고마움이 정말로 컸던지 개인 페이스 북에 물병과 두류봉 정상 석을 함께 찍은 사진에 “친구의 고마움을 정상 석에 새긴다”라는 멋진 표현으로 남겼다. 산행을 마치고 물병 하나 받은 것으로 섬섬 백리 길에 있는 백야도의 멋진 커피숍에서 값비싼 커피를 일행들에게 한 턱을 내는 즐거움을 누렸다.
아들 셋 대동한 젊은 부부산악인(?)
산린이를 자처한 친구는 나중에도 이야기 했지만 귀한 물을 얻은 그 순간 정말로 감동을 받은 모양이었다. 정기적으로 산행을 하는 우리에게는 늘 상 있는 일인데 경험이 많지 않아 그런 듯했다. 팔영산은 각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조금씩 달랐고 각 봉우리마다 특이한 이름을 가졌는데 누가 작명을 했는지 이름 하나하나 모두 근사했다. 오늘 산행의 마지막을 장식한 1봉 유영봉은 다른 봉우리에 비해 높이가 가장 낮았지만 정상 면적은 가장 넓어 산객들이 쉬어 가기에 좋았다. 이곳에서 팔영산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잠시 더 머물며 쉬어가기로 했다. 넓고 평평한 공간이 안온했다.
유영봉 정상에서 미리 올라와 조망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중에 마침 아들만 셋을 동반한 부부가 눈에 띄었다. 5살 막내와 8살 둘째 14살 정도로 보이는 첫째가 엄마, 아빠를 따라 여기까지 올라온 것을 보면 엄마, 아빠 모두 산을 좋아하는 듯했다. 아이들의 표정도 무척 밝았다. 가족 모두 조금 힘든 표정을 지었지만 유영봉 정상에 올라온 것 자체만으로도 큰 성취감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특한 마음이 들어 아이들에게 가져온 초코파이와 오이를 나누어주자 고마워했다. 가족들은 팔영산 휴양림에서 올라 왔다고 했다. 1봉인 유영봉 까지만 왔다가 갈 예정이라고 했는데 이곳 조망도 탁월해 아이들에겐 많은 영감을 주지 않을까 했다. 막내는 엄마바라기인지 엄마 근처를 떠나지 않았지만 둘째는 제멋대로 자유롭게 행동을 했고 큰 아들은 그런 동생들을 바라보며 어른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같은 배에서 낳은 자식들도 성격이 전부 판이해 보였다.
다른 한 편에 일단의 외국인들과 이들은 안내 산행하는 젊은 친구들이 보였다. 어디서 왔냐고 하지 영국에서 왔다고 한다. 이 먼 곳까지 온 것이 대단해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국내산들을 안내, 가이드 해 주는 클럽의 안내로 이곳에 왔다고 한다. 안내하는 젊은 친구들의 표정이 무척 밝았고 행동도 세련되었다. 이런 쪽으로 경험이 많은 듯했다. 안내 산행을 하고 있는 사람 들 중 유난히 밝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여성분에게 물어보니 우리나라 지리를 잘 모르는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전국 곳곳의 명산을 선정, 무료 안내 산행을 해 주고 있다고 했다. 이곳까지 오는 교통비와 숙박비 등은 모두 각 자 개인 부담이고 안내 산행만 봉사 차원에서 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배려와 성의가 고마웠다.
(2024.3)
사람이 깊은 지혜를 갖고 있을수록 자기의 생각을 나타내는 말은 더욱 단순해지는 법이다. 말은 결코 성찬이어서는 안 된다(한정주, 율곡, 사람의 길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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