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산행기,여행기,수필

(고흥 20) 570 하담정(荷潭亭)

(고흥 20)  570

 

하담정(荷潭亭)

 

 

남포 미술관 순례를 마치고 난 후의 하담정이란 이름을 지닌 정원 답사도 흥미진진했다. 미술관 건물 입구 전면에 자라고 있는 동백나무들이 대단했다 오랜 수령이 느껴지는 동백나무들 하나하나가 수형이 좋았고 생육 상태도 좋았다. 3월 말임에도 아직 화려한 꽃들을 달고 있었다. 50여 년 된 배롱나무는 이곳의 상징 목처럼 자리를 잡았다. 보물정원으로 불리고 있고 전라남도 민간정원 10호로 지정되어 있는 정원에 이르자 제일 먼저 노란 수선화가 방긋 웃으며 우리를 맞았다.

 

아직은 꽃이 피기 이른 시기임에도 수선화는 어느새 활짝 펴 봄의 전령사를 자처하고 있는 듯 싱그러웠다. 하담정은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정원처럼 보이지만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정원을 살펴보니 곽형수 관장 부부의 20여 년의 공력이 담긴 정원답게 화초와 수목들을 심고 배치한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90여 종의 희귀종의 나무와 200여 종류가 넘는 야생화를 포함한 화초류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하담정의 진가를 알리는 수국, 모란, 작약은 5월말부터 6월까지 화려한 모습을 드러내며 이곳을 천상의 화원으로 만들어 줄 듯했다. 곽관장께서 5월말 수국 축제 때 꼭 다시 한 번 방문해 달라는 말씀이 있었다. 연간 5만 여명의 방문객이 다녀 갈 정도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하니 고흥을 찾는 분들은 필견 코스로 다녀 가시길 권유 드리고 싶다.

 

본디 정원은 꽃이 피기 전까지는 화려하지 않다. 심지어 평범한 느낌으로 다가 올 수 있지만 한국의 정원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란 것이 본래 그렇다. 하담정에 대한 첫 인상도 다름 아니었다. 주인장께서는 팔영산이라는 걸출한 정원이 바로 이웃해 있기에 거기에 더하여 많은 것을 담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라는 것을 아시는 듯했다. 팔영산이 담지 못한 것들을 오밀조밀한 형식으로 배치하되 다양성을 추구했고 계절 별로 화려한 느낌이 들게 하되 사치스럽게 느껴지지 않도록 각별히 조성에 힘쓰신 듯했다. 그냥 볼 때는 평범한 정원 같았지만 설명을 듣고는 주인장의 조경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철학이 읽혀졌다. 계절별로 와서 보아야 하담정의 진가를 알 수 있을 듯했다.

 

한국 정원의 특징은 일본의 그것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디테일에 상당한 정성을 쏟고 가능한 모든 것을 인공화해 그야말로 화려함의 진수(眞髓)를 보여주는 일본의 정원은 그 나름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와 달리 한국의 전통 정원은 한국의 산천이 바로 그 교과서라고 할 수 있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모습을 추구하는 것이 한국 정원의 중요한 특징이고 그 이면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최대한 거슬리지 않고 자연스러움을 추구함에 있다. 조금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조경(정원)은 땅에 써내려가는 시()가 아닐까 싶다.

 

한국의 산을 두루 다녀 본 사람이면 누구든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선유도 공원, 아시아 공원, 대전 엑스포를 비롯해 용인 호암 미술관 정원으로 유명한 희원 등의 조성을 진두지휘한 한국 1세대 조경가인 정영선씨도 우리나라의 산이 바로 내 작업의 교과서였고 한국의 산천이야말로 신이 만든 정원이자 천국이다라는 말로 한국 정원에 대한 특징을 표현하였다. 한국의 전통 문화를 한마디로 표현한 儉而不陋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소박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한국 정원에도 딱 들어맞는 표현이 아닐까 싶다.

 

매혹적인 정원을 주인장의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고 나니 3월 말, 봄의 절정을 알리는 시기에 고흥을 찾은 것에 마음이 뿌듯했다. 마지막 꽃을 떨구고 있는 동백과 활짝 핀 수선화 그리고 야생화의 움트고 있는 모습까지 보게 되어 좋았다. 절경을 자랑하는 팔영산도 감상하고 좋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미술관과 더불어 예쁜 정원까지 주인장의 설명을 들으며 감상하고 나니 고흥은 이제 타향이 아닌 고향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도 끝자락 고흥에서 보물 산과 보물 미술관 그리고 보물 정원까지 둘러보고 나니 나는 이제 어제의 내가 아닌 듯했다. 고흥의 자연이 우리들에게 불러일으킨 영감과 더불어 국토에 대한 애정이 한층 깊어진 것에 대해 감사했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자 자연 그 자체가 정원으로 이루어진 고흥은 이제는 나의 마음의 고향으로 아주 오래도록 자리 매김 할 듯했다. 5월 말, 6월에 피는 수국과 작약, 모란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반겨줄지 무척 기대가 되었다.

 

(2024.3)

 

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보다 영리해야 한다(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