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19) 569
남포미술관 소장품의 眞價
남포 미술관을 방문한 날은 어제와 달리 다소 가랑비가 오는 흐린 날씨여서 우선 미술관 내부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주인장께서 아버님 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남포미술관의 역사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 주셨다. 또한 남포 미술관 부지가 여러 번 다른 사람에게 넘어갈 기회가 있었음에도 굳건히 지금의 모습으로 간직하게끔 된 바탕에는 이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 대한 사랑이 있었다고 했다.
여수와 고흥을 잇는 섬섬 백리길이 만들어지던 시절 섬과 섬을 잇는 연육교 시공을 담당한 건설사에서 이곳을 매입하여 직원 및 인부들 숙소와 현장 사무실로 쓰고자 하였으니 거절하였던 일도 있었다고 했다. 미술관 입장 수입만으로는 운영하기가 어려워 몇 번의 고비가 있었지만 어려운대로 이겨내고 그런대로 운영해 오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미술관과 정원을 운영하는 비용 되기가 만만치 않다고 하시면서도 평생 죽을 때까지 지금 이 상태로 운영하며 버텨내시겠다고 하는 말씀에서 남포미술관과 정원(하담정)에 대한 애정과 그의 단호한 의지가 읽혀졌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 몇 점만 팔아도 운영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은데도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했다. 미술관내에 전시된 작품들이 하나같이 예사롭지 않았다. 2,3개월 간격으로 지속적으로 새로운 것으로 전시를 바꾼다고 했다. 주로 소장품 전시를 많이 하지만 기존 작가들의 전시도 자주 한다고 한다. 지금 전시 중인 작품은 여러 화가들의 작품으로 서로 개성이 뚜렷해 감상하는 재미가 있었다. 모든 전시작품에 대해 한 점씩 모두 정성스레 설명을 해주시어 작품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 살아 계신 분도 있었고 돌아가신 분도 계셨는데 대부분은 많이 알려진 분들은 아니고 지금은 8,90대의 연세를 가지셨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전시된 작품 모두 수준이 무척 높게 느껴졌다.
전시된 그림을 보고 많은 분들이 여러 작가의 작품 구입을 타진했지만 대부분의 작가들은 매각보다는 전시를 통해 작품을 여러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으로 팔지 않는다고 했다. 다작을 추구하지 않는 작가들에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여러 좋은 작품 중에 내가 크게 마음에 와 닿은 작품이 있었다. 최주호라는 작가의 작품으로 짙은 색감으로 사물을 표현하고 사물의 윤곽도 선명하게 구현하여 어느 작품보다 개성이 두드러졌고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다. 작가의 내면과 정신세계가 어떠할지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자연을 대상으로 한 사실화이지만 대범한 색상과 색감 그리고 짙은 톤의 터치는 자연이 결코 보는 것처럼 평안함만 있는 것이 아닌 나름 치열한 환경 속에서 다양한 개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존재임을 암시하는 듯했다.
여러 개성 있는 작품에 대해 설명을 구체적으로 듣게 되어 이해가 쉬웠고 덕분에 그림을 보는 안목도 높아진 듯해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그림도 자주 보아야 그림을 해석하고 이해하는 실력과 안목도 높아지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남포미술관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작품은 사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우측 벽에 있는 조각그림(박승모작가)이다. 설명을 듣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데 우리들은 주인장의 자세한 설명을 듣는 호사와 더불어 대단한 작품임을 알게 되었다.
가는 스테인레스 철망을 여러 번 중첩시켜 만든 작품으로 부분적으로 중첩의 농담을 다르게 하여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을 표현한 조각그림이었다. 그림 하부에 전등을 설치하여 그냥 볼 때와 불을 밝혔을 때의 그림이 달랐다. 일반적인 상태의 그림과 빛을 밝혔을 때의 그림의 대비가 한 개의 그림을 두 개의 작품으로 느끼게 했다. 내가 보기엔 이런 표현은 신기에 가깝다는 표현이 들 정도로 무척 창의적인 작품으로 여겨졌다. 철망을 중첩시켜 기존의 그림을 그대로 모사한다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놀라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람의 상상력과 노력은 신의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이 조각그림 호가가 3억 원 이라는 말씀도 뒤에 덧 붙였는데 내가 보기엔 3억 이상의 가치가 있어 보였다. 이 조각그림 하나만 보고 가도 이곳 남포미술관을 찾은 보람이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보고 또 보아도 신비로웠고 대단했다. 나중에는 기존 작가의 그림을 모사하지 않고 본인만의 그림으로 이러한 시도를 해주시길 마음 속으로 기원했다.
(2024.3)
인생의 기회는 반드시 올 것이고 준비된 사람이라면 그걸 잡을 것이다(박웅현, 여덟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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