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흥 21) 571
연홍도(鳶洪島) 1
3월 말의 섬 속의 섬 연홍도는 유채꽃으로 더욱 화려했다. 고흥 앞 바다에 펼쳐진 230여 개의 섬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다. 고흥 10경의 하나로 섬 전체가 예술의 섬이라고도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붕 없는 미술관 고흥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 주었다. 거금도 신양 선착장에서 빤히 바라다 보이는 거리는 배로 5분이면 닿을 정도로 가까워 섬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봄 날의 밝은 햇살이 옥빛 바다를 비추자 눈부신 윤슬이 화답하며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팔영산 산행 후 곧바로 달려온 터라 온 몸에 나른함이 퍼졌다. 빨리 서두른 턱에 배 시간보다 30분 일찍 선착장에 도착해 시간 여유가 생겼다. 바다를 바라보는 눈도 긴장을 내려 놓고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 모처럼 남해 옥빛 바다의 아름다움을 찬찬히 바라 볼 수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금당도가 성큼 다가왔고 저 멀리 완도가 가늠 되었다. 섬들의 천국답게 바다 어디를 둘러보아도 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안도감을 주었다. 선착장 근처 방조제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두 남자의 여유가 부러웠다.
연홍도(鳶洪島)라는 지명은 섬 자체가 넓은 바다 위의 연(鳶)과 같은 모습이라고 해서 이름지어졌다가 한자가 어렵기도 하고 섬과 섬을 이어준다고 해서 ‘이을 연(連)’으로 바뀌었다고 했다. 내가 보기엔 원래 이름이 더 나아 보였다. 작지만 갖출 것은 다 갖춘 아담한 배를 타고 잠시 주변 바다를 둘러보는 사이 연홍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바닷가 특유의 비릿한 내음이 훅 다가왔다. 찾는 사람이 많은 지 선착장 입구부터 데크를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너울을 막기 위해 설치한 둑위로 연홍도를 상징하는 소라고동을 비롯해 다양한 조형물이 우리를 맞았다. 예술의 섬 답게 섬 전체가 조형물과 다양한 조각작품 그리고 벽화가 마을 곳곳에 자리잡고 방문객들에게 즐거움을 제공했다.
한국 최고의 레슬러로 한 시절을 풍미했던 김일 선수의 모습이 벽화로 남았다. 김일 선수 고향이 고흥 이라는 것을 다시금 떠올렸다. 지금은 찾고 싶은 고장으로 한 이름하고 있지만 김일선수가 활동했던 시절에는 고흥은 낙후된 고장의 상징과 같았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절이었지만 서울, 수도권과 멀면 멀수록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은 더 힘들고 농토도 척박했던 시절이었다. 오늘 찾은 연홍도는 그 어려웠던 시절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어 옛 시절의 고단함이 느껴졌다.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이곳에 살고 있는 분들의 삶은 그래도 많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싶었다.
(2024.3)
인간의 욕망이나 필요가 무한하다고 생각한다면 새로운 산업,새로운 비즈니스 ,새로운 일자리도 끝없이 생길 것이다. 유일한 한계는 인간의 상상력이다(프리드먼, 세계는 평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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