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7) 586
벽암 각성 대선사(1575-1660)
일주문 지나 대웅전 가는 길 우측,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커다란 비가 있는데 이 비가 바로 벽암 각성 대선사비(벽암국일도 대선사비)이다. 대부분 모르고 지나친다고 하며 해설사께서 안타깝다고 했다. 화엄사를 비롯해 해인사, 법주사 등의 큰 사찰 중수에 큰 역할을 하신 분이라고 했다. 아울러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에는 승병을 이끌고 참전하여 불교계의 위상을 드높이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고 한다. 화엄사 중창과 오늘의 화엄사를 만든 중요한 인물임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는 불손함이 죄송스러웠다.
화엄사를 비롯해 오랜 역사를 지닌 사찰들이 세월의 켜가 중첩되고 다양한 사건 사고를 격으며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다는 자체가 기적이고 신비할 따름이다. 우리나라 사찰의 상당부분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 왔기에 더욱 애정이 가고 잘 보전해야 할 문화재가 아닌가 싶다. 화엄사의 가람 배치는 내가 보기에 가장 이상적인 사찰의 배치처럼 느껴졌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씩 바닥이 높아지는 위계(位階)와 중심축 그리고 핵심공간의 마당과 핵심 전각들의 높이(위계)가 아주 절묘했다. 눈에 거슬리지 않고 아주 자연스러웠다.
핵심공간의 전각(각황전, 대웅전 등)들과 앞마당의 단차(段差)는 건축물의 크기 뿐만 아니라 거주하는 사람들의 시선, 공간감을 고려해 가장 편안한 치수(모듈)를 적용한 느낌이 들었다. 밀집 형태로 되어 있는 건물 배치도 실제 눈으로 보면 그런 느낌이 거의 들지 않게 조화롭게 배치 한 느낌이 들었다. 안정감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였고 거대한 지리산의 격에 맞춘 건축물 규모 또한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절한 크기로 여겨졌다. 건축물 하나하나 살펴보면 결코 작지 않은 규모지만 전체 배치로 볼 때는 안정감이 느껴지는 배치여서 장중하면서도 안온함이 느껴졌다.
일주문에서 핵심공간에 이르기 까지 서서히 높아지는 형태를 취해 단조로운 느낌을 배제하고 마음 수양하러 온 수행자에게는 용맹정진 하겠다는 마음 자세를, 방문객들에게는 뭔가 새로운 것이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도록 했다. 핵심 공간 앞마당 진입 전에 몸을 돌려 뒤를 보면 산과 산이 만나 골을 이루는 조망 또한 고려한 듯했다. 조망을 중심으로 하는 축과 건물 배치의 중심축이 서로 달랐지만 전혀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가람 배치가 아주 짜임새 있게 되어 있다는 느낌을 들게 했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기준으로 말씀 드리는 것이고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도 있음을 사전에 양해 드린다.
(2024.3)
진정으로 집중할 땐 지금 이 순간에 하는 일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에리히 프롬, 우리는 여전히 삶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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