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7) 449
금둔사(金芚寺)
천 년 사찰 금둔사는 금전산(金錢山) 품 속에서 안온했다. 금둔사는 태고종 종찰인 선암사의 말사이다. 조계종에 비해 사찰의 숫자가 많지 않아 태고종 사찰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다. 순천의 명찰 송광사와 선암사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납월홍매로 한 이름 단단히 하고 있는 곳이 금둔사다. 금둔사 이름에 담긴 뜻은 여느 절과는 달랐다. 금은 부처를 상징하고 둔은 싹이 돋는다는 뜻을 지닌 한자어로 모든 중생은 각자 불성을 지니고 있기에 스스로 노력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의미를 지녔다고 한다.
누구나 노력하기에 따라 그리고 조건이 맞추어 질 때 부처(깨달은 사람)가 될 수 있다는 뜻을 절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이름을 한 번 부를 때마다 의미를 되새기며 정진에 힘쓴다면 깨달음에 빠르게 도달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화두를 따로 정할 필요가 없이 금둔이라는 화두만 가지고 정진 또 정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지혜가 짧은 범부의 눈으로 직관적으로 보고 던진 말이니 오해가 없으셨으면 한다.
금둔사는 백제 위덕왕 3년(583)에 담혜 화상께서 창건 하셨다고 한다. 작은 절이지만 보물 두 점을 지녔다. 삼층 석탑과 석불비상 두 점으로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추정 한다. 금둔사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을 연 철감국사와 제자 징효대사가 주석해 선풍을 일으켰던 선종가람이라고 한다. 대웅전을 제외하고는 건물들은 모두 고만 고만했다. 천 년 고찰이지만 현존하는 건축물은 모두 현대에 지은 건축물이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모든 건축물이 전소 되어 폐사지 형태로 남아 있던 것을 1983년 선암사의 칠전선원에 주석하셨던 지허 선사께서 개인소유지였던 터를 매입, 지난한 노력 끝에 중창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허 선사는 15세에 선암사로 출가 후 용맹정진을 통해 생사일여의 큰 깨달음을 얻은 후 선암사 주지를 거쳐 태고종 종정까지 이르신 분이고 현재 금둔사에 주석하고 계신다고 한다.(순천시 홈페이지와 금둔사 리플렛 참조)
큰 도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곳에 자리 잡은 금둔사는 양택 명당으로 느껴졌다. 밝은 터라는 느낌이 들었고 금전산 기슭에서 안온했다. 핵심공간인 대웅전과 대웅전 앞마당이 환하게 느껴질 정도로 밝았고 전망이 좋았다. 대웅전 앞에서 바라보는 산들의 능선이 부드러웠다. 높지 않은 산들이 둥글고 평평한 능선을 이루며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했다. 적당히 열리고 적당히 가려진 조망이 좋았다. 지금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내년을 기약하며 다소곳이 서있는 납월홍매(臘月紅梅)가 밝은 태양빛에 눈이 부셨다. 드러내지 않아도 눈에 확 띌 정도로 건강한 자태를 간직했다. 내 년 섣달에 황홀한 꽃을 피우기 위해 몸을 낮추고 숨죽이며 홀로 고고했다.
(2021.10)
인간을 유형으로 말하지 않고 한 인간의 개별성에 끝까지 집중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문학은 인간에 대한 치유적 접근에 적합한 도구이다(정혜신, 정혜신의 사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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