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8) 456
소수서원(紹修書院) 1
소수서원은 부석사에서 무섬마을 가는 길 방향에 있다. 우리나라 서원의 효시이자 나라가 인정한 최초의 사액서원(賜額書院)이다. 사액서원이라 함은 나라로부터 책, 토지, 노비를 하사받고 면세뿐만 아니라 군 징집에서도 제외되는 특권을 가진 서원을 말한다. 더불어 임금께서 직접 이름을 지은 편액을 내려주는 서원을 말하는데 소수서원은 임금이 친필로 편액을 써서 내려준 서원이기에 그 의미가 무척 크다. 풍기군수인 주세붕이 세웠지만 사액서원으로 인정받은 것은 이어서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선생의 노고가 컸다. 명망 있는 분의 주청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 당시 최초로 나라가 인정해주는 사액서원으로 지정된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670여 개의 서원 중 9개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소수서원이 첫째를 장식하고 있다.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 까지 지방에 세워진 사립 고등교육기관으로 성리학을 근간으로 한 교육을 통해 인성의 함양과 사회교화 등에 적극 관여함과 동시에 지방인재의 양성기관으로 큰 역할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양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제도권 교육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에서도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은 자못 의미하는 바가 크다.
전국적으로 인재를 양성하고 배출하는 기반이 마련되는 기회가 되었고 이를 통해 많은 인재들이 중앙으로 진출함으로서 국가적으로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게 되는 선순환이 이루어져 국가의 발전도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서원의 역할은 그 당시 매우 컸음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서원과 관련된 명망 있는 선현을 추모하는 제향공간과 공부에 힘쓰는 강학공간으로 이루어진 서원은 한국 서원만의 특징이다.
학문에 힘쓰되 선현을 사표로 삼아 자신의 인격도야(人格陶冶)에 매진함으로써 존경받는 학자로 남든지 중앙으로 진출해 벼슬의 길을 걸음으로써 나라에 봉사하는 삶을 살 것인지는 각 자의 생각에 달렸겠지만 인격연마를 통해 나라와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초심은 많은 세월을 지나면서 일부 변질된 부분도 있었지만 많은 부분은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기틀을 만드는데 큰 일조를 했다고 생각하고 싶다. 국가의 발전은 다양한 역사적 사건과 다양한 인물들의 삶이 투영된 결과이기에 서원 또한 무척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였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23.3)
자연의 도는 무엇은 귀하고 무엇은 천하다고 구별해 두지 않는다(윤재근, 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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