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4) 470
최치원과 상림 2
외국인이 중국에서 장원 급제를 한 것도 놀라운 일인데 더욱 놀라운 것은 당나라를 한 때 위태롭게 했던 황소의 난(875-884) 때 격황소문(擊黃巢文)이라는 반역자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을 써 단숨에 당나라에서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고 한다. 황소의 난을 토벌하자는 격문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격문을 읽은 황소가 두려움에 떨며 읽는 의자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한다. 조금 과장된 점은 있지만 그만큼 격문이 대단했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그 당시는 문장의 솜씨가 그 사람의 품격과 재능을 좌우 할 만큼 컸다는 것을 이해하면 그 상황이 어떠했을지는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후 최치원은 신라로 귀국, 유명한 우리나라 최초의 문집으로 알려진 계원필경을 집필하고 헌강왕에게 올려 다시 한 번 그의 천재성을 증명했다. 이후 진성여왕 시절에 골품제의 폐단을 개혁하고자 시무 10여조를 올렸으나 진골들의 반발로 받아들여지지 않자 지방태수를 전전하다가 관직에서 물러나 전국을 떠돌며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말년에는 홍성(장곡면)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머물다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지금도 홍성 장곡면 월계2리에 가면 그가 남긴 흔적인 마애 금석문이 전해지고 있다고 한다.
매년 음력 정원보름이면 이곳 마을에서 “최치원선생 춘향대제”를 지내고 있다고 했다. 특히 마을 내에 용은별서(龍隱別墅)라고 각서 된 바위가 있는데 이 주변이 그의 은거지로 추정된다는 확신을 가지고 매년 그를 추모하는 대제를 지내고 있다고 한다. 시간이 되면 나도 꼭 한 번 둘러보고 그의 말년의 자취를 돌아보며 추모의 염을 전하고 싶다. 정통 사학계에서는 아직 유적지로 인정을 하지 않고 있어 안타까웠지만 조만간 역사적 사실로 인정되기를 소망해본다.
시진핑도 그를 존경하고 그의 시를 애송한다고 한다. 타국인 중국의 글을 터득해 중국시를 썼고 당나라에서 장원급제를 했기에 중국인들도 그를 잘 안다고 한다. 그가 쓴 격황소문은 역사적 사실로 남아 있기에 중국역사를 조금만 공부한 사람이면 그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하동, 서산, 홍성 등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그의 발자취가 사학계에서 받아들여진다면 그에 대한 연구는 더욱 풍성해지리라 믿고 싶다. 다행히도 의성 고운사 입구에 자리 잡은 최치원 문학관이 일부나마 그 역할을 해주고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함양 상림에 와서 최치원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그를 추모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행은 인문학임을 다시금 절감한다.
불교에서는 마음공부를 중요하게 여긴다. 마음공부는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통찰력이라는 지혜가 생긴다고 하는데 이때 생기는 지혜는 예지력 뿐만 아니라 사물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어 막힘이 없어진다. 늘 바쁜 마음으로 살면 평정심을 잃게 되고 분별심이 일어나 집착과 욕심에서 벗어 날 수 없다.
가끔은 대자연을 찾아 마음을 고요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늘 뒷전으로 밀어 놓고 사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삶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는 원인도 있지만 성공을 향한 무조건적인 집착이 모든 것을 후순위로 돌려놓는다. 성공은 헌신과 집중의 극한을 요구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실패한 성공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런 분으로 인해 사회가 발전하고 성장한다. 우리들은 그 분들에게 어느 정도 빚지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미래의 시대는 여전히 기업가 정신을 요구하고 절대적인 창의력을 지향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력은 마음이 고요할 때 번쩍 떠오르는 불꽃이다.
(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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