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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양 4) 469 최치원과 상림 1

(함양 4) 469

 

최치원과 상림 1

 

숲 속을 벗어나자 커다란 연꽃 밭이 나타났다. 막 피기 시작하는 연꽃 밭 규모가 무척 컸다. 잎은 대형 화물차 바퀴만큼 크게 느껴졌다. 옅은 노란색을 띈 연꽃이 귀티가 풍겼다. 고귀한 자연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연꽃은 보면 볼수록 독보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개의치 않고 또한 영향도 받지 않으며 자신만의 자태를 당당히 유지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인간의 본성을 떠올리게 했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웠고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신분 높은 사람들이 아닌 서민들과 눈높이를 함께 하는 겸손함도 지닌 듯했다.

 

상림을 이야기하면서 고운 최치원을 논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은 예의가 아닌 듯싶어 최치원 선생에 대한 개략적인 언급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상림 내에 있는 사운정(思雲亭)은 고운 최치원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정자인데 1906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성골, 진골 등의 신분제가 무척 강했던 신라시대, 육두품에 머물렀던 그는 더 이상 나아갈 수가 없었다. 천재적인 머리와 재능을 지녔건만 신분제로 인해 그의 야망을 펼 수 없는 한계를 알고는 뜻을 접었다. 그의 생몰연대를 알 수 없는 것은 신분제 사회에서 벗어나 전국을 떠돌며 잊혀 진 존재로 살아갔기에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그에 대한 자취가 전국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을 보면 그의 말년의 생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의성에 가면 고운사라는 큰 사찰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16교구 본사로 의성, 안동, 영주, 봉화, 영양 등의 지역을 관장하는 큰 사찰이다. 유명한 영주 부석사와 안동 봉정사가 모두 고운사의 말사에 불과하다고 하니 고운사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고운사는 최치원 선생께서 경내에 있는 가허루와 우화루 등의 건립에 관여하여 고운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올만큼 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2019년에 고운사 입구 근처에 최치원 문학관이 생겼다. 그의 생애와 업적 등을 잘 정리해둔 문학관으로 한옥 건축물로 근사하게 들어섰다. 고운사 방문을 겸해서 꼭 들러보시길 권해 드린다. 최치원은 신분제의 한계를 넘어보고자 12세에 당나라로 유학, 6년 만에 장원급제를 했다. 지방 태수(현위)로 당나라 관직에 올라 선정을 베풀었다. 인백기천(人百己千)의 정신으로 그 어려운 것을 해냈다. 남이 백 번하면 나는 천 번을 한다는 정신이 그 밑바탕이 되었다.

 

(2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