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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강원 12) 479 오대산 상왕봉

(강원 12) 479

 

오대산 상왕봉

 

비로봉에서 상왕봉가는 길은 평평한 능선 길이다. 어려운 구간을 해냈다는 뿌듯함과 이제부터는 쉬운 구간만 남았다는 작은 안도감 속에서 능선을 걷는 기분이 좋았다. 길에 핀 꽃들이 곳곳에 얼굴을 드러내고 자기들도 보아 달라고 하는 듯 고개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나도 개감채, 얼레지, 피나무 등이 지천으로 피었다. 길가 숲속에 숨어 군락을 이루어 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연두색과 초록으로 가득한 높은 고산지대에 군데군데 무리지어 피어 컬러풀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니 산행 길이 아닌 산책 길 같은 분위기가 물씬 났다.

 

상왕봉 정상석에서도 인증샷을 찍었다. 정상석 뒤로 거대한 산들의 능선이 눈부셨다. 대부분 비로봉만 올랐다가 하산하는 지 상왕봉가는 길은 사람들이 거의 없어 우리 일행들만 오붓하게 산행을 즐겼다. 가는 길가에 자라고 있는 커다란 나무들의 자태가 범상치 않았다. 비로봉과 상왕봉을 지키는 수호천사 같았다. 예사롭지 않은 나무들 때문에 일반 평범한 산들과는 사뭇 다른 기운을 지닌 산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평범한 산에서는 결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상왕봉부터는 본격적인 내리막 하산 길이다.

 

이곳부터 시작하는 하산 길 초입 부근에 장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주목군락이 나타났다. 살아 천 년 죽어 천 년을 간다는 주목이 하산하는 우리를 근엄한 모습으로 반겨주었다. 천 년이상된 주목나무들이 오대산 산신께서 직접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잘 자라고 있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도 남을 주목 군락은 대체로 1m 이상의 산 정상부에만 자주보이는 것이 신비스럽다. 산 정상부근에 있어야 벌목하기 어려운 것도 한 몫을 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다양한 자태를 지닌 주목들을 천천히 관찰하며 내려오느라 하산 속도가 지체되었지만 아쉬움은 없었다.

 

상왕봉에서 40분 정도 내려서자 신작로 같은 산판도로가 나타났다. 폭이 꽤 너른 산판도로(산불진화용 도로)가 처음에는 어색하게 느껴졌지만 조금 걷다보니 나름 산판 길만의 독특함이 있었다. 여기서 400m 정도만 거꾸로 오르면 북대암을 갈 수 있었지만 다음 기회로 돌리고 상원사 방면으로 내려섰다. 신작로 같은 산판 길에 사람과 차들이 보이지 않고 우리 일행들만 있으니 너른 길이 꽤 호젓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모두들 편한 마음이 되어 중요하지 않은 내용을 가지고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이 열심히 떠들고 소통했다.

 

앙금 처럼 남아 있던 생각의 찌꺼기들이 스르르 사라졌다. 마음이 개운해지고 시원해졌다. 여성들이 수다가 많은 것이 이해가 되었다. 제법 긴 산판 길을 1시간 가까이 걸았다. 오래된 숲이 좌우를 둘러 싸고있는 평평한 산판 길을 걷는 기분이 좋았다. 가끔씩 이런 길도 걸어 볼만 했다. 등산을 싫어하시는 분은 상원사 주차장에서 북대암까지만 다녀오셔도 편하게 오대산을 산행 하는 기분을 만끽해 볼 수 있을 듯했다.

 

4시간 반 정도의 산행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상원사 주차장을 조금 남겨둔 곳 숲 속에서 뭇 새들의 합창이 주변에 울려 퍼졌다. 오늘의 안전 산행을 축하해주는 합창 같았다. 이곳에 오면 꼭 먹고 가야하는 오대산 산채정식이 기다리는 식당으로 향했다. 가는 길을 월정사 선재 길이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다음에는 이쪽도 방문해 달라고 말을 걸었다. 일행들 얼굴을 살피니 어느새 모두 부처님 얼굴이 되어 있었다.

 

(20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