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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7) 506 백수 문학관

(김천 7)  506

 

백수 문학관

 

김천이 나은 시조 시인 백수 정완영(鄭椀永, 1919~2016) 선생의 문학관은 직지사 입구에서 멀지 않았다. 당초에는 직지사만 보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계획 이었는데 우연히 백수 문학관이 눈에 들어 왔다. 직지사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눈에 띄였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 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유명한 조국이라는 시조를 지은 분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고인이 살아 계실 때 세워진 문학관(2008년 개관)이다.

 

우리나라 시조시인 최초의 문학관이라고 했다. 정지용 시인을 비롯해 여러 시인의 문학관은 있어도 시조 시인의 문학관으로는 국내 최초이기에 의미하는 바가 커 보였다. 대부분의 시는 자유시에 가까워 크게 특별한 규칙이 없는 반면 시조는 음률이 있고 기법도 일반 시와는 조금 차이가 있어 훈련이 필요하고 그 규칙에 맞추어 쓴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시조는 일반 시보다 쓰기에 좀 더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잘 아는 지인 중에 시조시인이 있는 데 그 분이 쓴 시조를 읽다보면 일반 자유시에서 느낄 수 없는 깊은 내공이 느껴져 그 분을 새삼 다시 보게 된다. 나만 느끼는 감정일 수도 있으나 보편적으로도 일반 시에 비해 창작의 난이도가 높지 않을까 싶다. 백수 문학관은 소담하고 아담했다. 한 사람의 문학관으로는 어찌 보면 작다고 볼 수 있으나 자신의 고향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김천이 낳은 시조 작가이자 현대 시조의 선구자로 알려진 그의 문학관 방문을 통해 김천 시민들의 자긍심도 느껴보고 그의 대표작들을 소리 내어 읽어보니 이곳을 방문하기 전과는 조금 달라진 자신을 느끼게 되는 유익함과 즐거움이 있었다. 정완영 선생의 호가 만들어진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김천의 천()이라는 한자어를 파자해서 만들었다고 하며 또 다른 의미로는 깨끗한 물을 상징한다고 했다. 깨끗한 물이란 오염되지 않은 물을 말하며 세상을 정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담겼다고 한다. 그는 늘 마음을 깨끗하고 정갈하게 하기 위해 60여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왔다고 하는데 그의 성실함과 지향하는 바를 향해 나아가는 대단한 뚝심이 느껴졌다.

 

(2023.8)

 

    

고향생각

 

                                                                     정완영

 

 

쓰르라미 매운 울음이 다 흘러간 극락산 위

 

내 고향 하늘빛은 열무김치 서러운 맛

 

지금도 등 뒤에 걸려 사윌 줄을 모르네.

 

 

 

동구 밖 키 큰 장승 십리 벌은 다스리고

 

풀 수풀 깊은 골에 시절 잊은 물레방아

 

추풍령 드리운 낙조에 한 폭 그림이던 곳.

 

 

 

소년은 풀빛을 끌고 세월 속을 갔건마는

 

버들피리 언덕 위에 두고 온 마음 하나

 

올해도 차마 못 잊어 봄을 울고 갔더란다.

 

 

 

오솔길 갑사댕기 서러워도 달은 뜨네

 

꽃가마 울고 넘은 서낭당 제 철이면

 

생각다 생각다 못해 물이 들던 도라지꽃.

 

 

 

가난도 길이 들면 양처럼 어질더라

 

어머님 곱게 나순 물레 줄에 피가 감겨

 

청산 속 감감히 묻혀 등불처럼 가신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