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 4) 512
상로전(上爐殿) 영역
건축물은 그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어 내게는 특히 많은 관심이 가는 편이다. 역사와 미학 등을 전공한 분들에게는 창건 역사와 불교회화 등이 주된 관심사가 될 것이다. 관련 분야의 전문가는 문화유산을 보는 눈이 일반인들과는 다르고 해당분야에 집착하는 면이 있지만 일반인들이라면 나만의 기준으로 살피고 느끼는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통도사 같은 대 가람은 방문 전에 통도사에 관한 약간의 지식을 알고 온다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전각의 배치와 전각들을 하나하나 살피다보니 천 년 이상 된 사찰이 뿜어내는 아우라가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전각을 비롯한 부속건물이 많아 조금은 정신이 없을 정도지만 마음을 편히 하고 시간여유를 가지고 둘러보면 모든 건축물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마음이 부리는 요술이다.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습관이 되면 가장 좋지만 이게 그리 쉽지 않다. 그래도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대웅전(大雄殿)
상로전의 대표전각은 대웅전, 응진전, 명부전이고 그 중 중심전각은 단연 대웅전이다. 통도사를 상징하고 있는 금강계단은 전각은 아니지만 전각이상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곳으로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보면 된다. 상로전의 중심전각이자 통도사의 중심전각인 국보로 지정된 대웅전(大雄殿)은 전후좌우 4면의 모습이 서로 상이했고 4면의 편액 역시 모두 달랐다. 많은 사찰을 다녀 보았지만 4면의 모습이 다르고 편액이 4개로 된 전각은 통도사에서 처음 보았다. 처음 보는 순간 대웅전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통도사 대웅전은 전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로 모두 15칸으로 된 대형 전각으로, 특이한 것은 두 개의 건물을 합쳐놓은 평면 형태여서 건물내부의 기둥배치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형태로 되어 있다. 현재 건물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44년(인조 22)에 중건하였다고 하며 건물의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이며,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는 대신 불단 뒤편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이 위치하는 구조로 되어있어 아주 특이했다.
불당 내부에는 동서방향으로 길게 불단만이 있고, 그 앞쪽 중앙에 설법상(設法床)이 있어 설법할 때 사용한다고 한다. 지붕은 팔작지붕의 복합형인 정(丁)자 형인데 정면과 양쪽측면에 박공(朴工) 부분이 보이게 하여 특이한 형태로 되어있다. 지붕의 막새기와 상부에는 도자기 연봉 장식이 있어 지붕에 많은 정성을 쏟았음을 짐작 할 수 있었다. 대웅전 전각 4면의 편액은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참고로 적멸보궁에 대하여 간단히 개관한다. 사찰에 가면 자주 나오는 말이니 이 정도는 알아두시면 유익하지 않을까 싶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말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전각을 말하며 적멸(寂滅)이라는 말은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경계(境界)를 표현한 말로, 범어(梵語)의 열반(涅槃 nirvana)을 번역한 말이다. 그리고 보궁(寶宮)은 통상 불상을 모시고 있는 집을 전(殿)이나 각(閣)이라 표현하는데 비하여 좀 더 상위개념으로 ‘궁(宮)’이라 사용한 것이고, 한층 더 높여 보배로운 궁전이라고 한 것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듯싶다.
적멸보궁(寂滅寶宮)은 본래 두둑한 언덕모양의 계단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님께서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法)을 법계(法界)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었다.(영월 법흥사 적멸보궁이 그런 형태로 되어있다) 진신사리(眞身舍利)는 곧 부처님과 동일체로서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불상(佛像)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경건한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불상을 따로 만들지 않고 부처님과 동일하게 여겨지는 진신사리를 모시게 된 것으로 이해하시면 되지 않을까 싶다.
대웅전의 내부 천정 형식은 우물천정으로 목단, 국화문 등을 조각한 위에 단청(丹靑)을 하여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같은 목조조각은 조선시대 목조 공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대웅전 전각의 크기는 남북이 15.8m, 동서가 10.1m 이라고하며 동쪽의 대웅전 현판 아래 두 장의 꽃살문 역시 조각이 매우 섬세하고 아름다웠다. 연화문, 옥단문, 국화문 등을 새겨 문살을 장식하였다.
건물의 네 귀퉁이에는 버팀기둥을 놓아 무거운 추녀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하였으며 외관 역시 전체적으로 조화를 잘 이룬 뛰어난 목조 건축물로 손색이 없었다. 국보로 지정될만한 가치를 지녔고 국보이상의 위계를 지닌 건축물로 느껴졌다. 통도사 대웅전에 대한 연구만으로도 석, 박사 논문 정도는 거뜬하게 나오지 않을까 할 정도로 많은 내용이 숨어 있는 전각처럼 느껴졌다.
(2023.8)
젠틀맨은 절제된 사람이라는 뜻이다(한홍, 거인들의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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