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11) 541
남장사(南長寺)
남장사는 상주 삼악(三岳) 중 하나로 일컫는 노악산(露岳山 728.5m)의 품속에서 안온했다. 천 년 사찰답게 울창한 노악(음)산 기슭에서 화룡점정(畵龍點睛), 홀로 빛났다. 경북 8경 중 하나로 불릴 만 했다. 품은 터는 작았으나 극락보전(極樂寶殿),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한 건축물이 돋보였고 지닌 보물 만해도 8점이나 될 정도로 옹골찼다. 일주문 지나 도안교(到岸橋) 부근에 있는 400여 년 된 느티나무는 남장사의 수호 장군처럼 거대한 몸짓으로 건강미를 자랑했다.
남장사는 ‘상주 4장사(長寺)’로 불리는 북장사, 갑장사, 승장사(승장사는 지금 터만 남아 있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상주의 대표 사찰로 우뚝했다. 내가 보기엔 품은 문화재와 건축물을 비교해 볼 때 가장 으뜸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지 않은 터에 자리 잡은 사찰이지만 규모가 큰 사찰에서나 볼 수 있는 보물을 그것도 국보급 보물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남장사 일주문 또한 내가 그동안 보고 경험했던 사찰의 일주문 중 가장 독특했다.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방식과 지붕아래의 용 모양 조각장식 등은 여느 사찰에서도 볼 수 없는 형태로 남장사의 품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일주문 하나에도 세심한 정성을 쏟은 느낌이 들었다. 일주문으로 짐작해 보건대 남장사는 창건 당시 지금보다는 훨씬 규모가 큰 사찰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일주문은 창건 이후에 건립 되었지만 극락보전과 보광전 건축물에 버금가는 일주문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았나 했다.
사찰 주차장에서 남장사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무척 운치가 있었다. 길지 않은 진입로이지만 숲이 울창해 심심산골의 사찰을 찾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울창한 숲길이 주는 순수함이 좋았다. 고즈넉한 분위기는 남장사를 더욱 품격 있는 사찰로 느끼게 했다. 남장사는 주불전이 두 개로 이루어진 아주 특이한 사찰이다. 범종루 지나 있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보전과 극락보전 후면에 있는 비로자나불을 모신 보광전 모두 건축물의 기품이나 불전 구성에 있어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용호상박(龍虎相搏)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처음에는 보광전이 주불전 이었으나 지금은 극락보전을 주불전(본전)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도량에 와서 서로 비교 우위를 논하는 자체가 우스운 일이지만 일반인의 입장과 건축을 전공한 사람의 입장에서 문화재에 대한 이해와 재미를 돋우기 위한 표현임을 이해해 주셨으면 한다. 아쉽게도 극락보전은 보수 공사 중이어서 제대로 살펴보지 못해 아쉬움이 컸지만 보광전은 제대로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사찰의 터가 크지 않아서인지 건축물의 배치가 조밀하고 한데 몰려 있어 조금 답답하다는 인상을 받았지만 사찰을 둘러싼 울창한 숲이 촘촘한 건물 배치의 답답함을 해소해 주고 있었다.
남장사의 보물
남장사에 오시면 꼭 보고 가야할 문화재로 극락보전의 목조 아미타여래 삼존좌상과 보광전의 철조 비로자나불상,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이 있고 그 외 감로왕도와 영산회 괘불도가 있는데 모두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남장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부속암자인 관음선원의 목조 관음보살좌상과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도 시간이 되시면 보고 가시길 권해 드린다. 이 중 특이한 것은 보광전과 관음선원의 목각 아미타여래 설법상인데 보통은 주불상 뒤에 탱화(회화)로 그려 넣는 것이 보통인데 나무로 조각한 목각탱으로 대신해 무척 드문 형식이라고 한다. 나도 이곳 남장사에 와서 처음 목각탱을 보았고 나무에 금박을 입혀 화려함의 극치를 보는 듯했다. 일반 탱화가 주는 느낌과는 또 다른 감흥이 있었다.
금박을 입힌 목각탱의 조각 솜씨는 그 당시 조선 최고의 승려 조각 장인이 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보고 또 보아도 아름답고 대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남장사에 와서 목각탱과 보광전 건축물 하나만 보고 가도 이곳을 찾은 보람은 충분하지 않을까 했다. 비로자나불을 모신 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겹처마에 다포식 공포를 높게 들어 올린 팔작지붕 형식으로 규모는 크지 않은 전각이지만 무척 화려했다. 어찌 보면 크기에 비해 과장된 형식의 화려함이 돋보였다. 처음 지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화려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크지 않은 전각 지붕 아래 화려한 공포를 촘촘히 배치하고 겹처마까지 들임으로서 남장사 건축물 중 가장 화려한 건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좌우를 들어 올린 팔작지붕 형식까지 더해져 경북지방에서 가장 돋보이는 건축물이 아닐까 싶었다. 경북 8경으로 지목한 것도 아마 보광전 때문이지 않았을까 했다. 물론 목각탱도 크게 한 몫을 하고 있지만 보광전 건축물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했다.
보광전 왼쪽에 있는 전각이름이 특이했다. 교남강당(嶠南講堂)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어 궁금했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승려들의 강학공간이자 상주 선비들의 시회(詩會)가 이곳에서 열린다고 했다. 사찰에서 이곳 지역 선비들을 위한 공간으로 배려 한 듯했다. 낙동강을 바라보며 하는 시회와 노악산 깊은 숲 속에서 하는 시회는 느낌이 다를 듯했다.
남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통일신라 830년(흥덕왕 5) 진감국사 혜소(774~850)가 창건한 사찰로 당시의 절 이름은 장백사(長栢寺)였는데 1186년(고려 명종16) 각원화상이 남장사로 개칭하면서 중창하였다고 한다. 그는 830년인 57세때 중국 유학에서 돌아와 이곳에 머물다가 지리산 하동 쌍계사를 중창하고 그곳에서 주석하다가 입적했다고 한다. 최치원이 짓고 쓴, 쌍계사의 국보 진감선사대공탑비문(887)에 혜소의 행적을 묘사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그는 이곳 장백사에 머물면서 832년에는 무량전(현, 보광전)을 창건하고 중국 유학 당시 배워온 범패(梵唄: 불교음악,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한 노래)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급했다고 한다. 범패는 판소리, 가곡과 함께 우리나라 3대 성악곡 중의 하나라고 하는데 아직 한 번도 들어 본적이 없기에 언제 시간을 내어 꼭 들어봐야겠다고 속으로 다짐했다. 하동 쌍계사에 있는 진감선사비문에 적혀 있는 진감선사가 남장사를 개창한 분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범패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급한 진감국사가 창건하고 천여 년의 세월을 견디며 오늘날까지 굳건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 남장사가 상주 최고의 사찰을 넘어 경북 최고의 사찰로 우뚝 서길 기원했다. 많은 문화재와 다양한 건축, 조각 기법을 보고 감상할 수 있는 남장사는 이번 상주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문화유산으로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을 듯했다.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우리나라 전국 도처에 산재해 있는 사찰은 우리 민족 정신문화의 구심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세연년 잘 보존하여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당대를 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남장사에 와서 문화유산 보전에 대한 사명감을 다시 한 번 새겼다.
(2023.10)
인간은 사랑과 죽음 그리고 여행을 통해서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실감한다(전규태, 단테처럼 여행하기)
'산행기,여행기,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주 13) 543 함창 카페 버스 정류장 (2) | 2024.05.18 |
---|---|
(상주 12) 542 공검지 (0) | 2024.05.18 |
(상주 10) 540 성주봉 자연 휴양림, 성주봉 한방 사우나 (0) | 2024.05.13 |
(상주 9) 539 도남서원 (0) | 2024.05.13 |
(상주 8) 538 국립 낙동강 생물 자원관 (0) | 2024.05.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