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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경주 2) 592 500년을 이어 온 마을

(경주 2)  592

 

500년을 이어 온 마을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답게 500여 년을 이어오고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느낌이 들었다. 세계문화유산이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잘 구현하고 있는 사례이기에 안동 하회마을과 더불어 세계문화 유산으로 선정되지 않았나 싶었다. 하회마을에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행이 다녀갔고 양동마을에는 영국 찰스 황태자가 다녀갔다고 하는데 한국의 뿌리를 알고 싶어 하는 영국이란 나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어떤 분야든 가리지 않고 본질을 추구하는 나라가 선진국임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500여 년의 오랜 역사의 켜가 쌓여 있는 양동 마을을 한마디로 정의하기가 싶지 않았다. 전반적인 느낌은 성리학을 근간으로 하는 조선의 통치이념에 맞게 검소함 속에서 누추하지도 화려하지도 않게 무척 신경을 쓴 듯했다. 문헌에 나와 있는 내용과 양동 마을 홈페이지 그리고 마을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본다. 최소 이 정도는 알고 있어야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에게 조금은 설명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국민이 자기나라 문화유산에 대한 빈약한 지식은 외국인에게는 부끄럽게 느껴질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기에 그 점을 고려해서 말씀드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넘어 가주셨으면 한다.

 

마을이 조성된 동기가 재미있었다. 조선시대 전기까지는 혼인 후 남자가 여자 집에서 사는 것이 일반적 이었다고 하는데 이를 장가간다는 표현을 썼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처가입향(妻家入鄕)의 사례인데 양동 마을이 그 대표적인 마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풍덕 류씨 남자가 여주 이씨 처가에 장가들고, 시간이 지나 경주 손씨 남자가 풍덕 류씨 처가에 장가들고, 뒤이어 또 다른 여주 이씨 남자가 경주 손씨 처가에 장가들면서 정착해 갔다고 한다.

 

조선시대 중, 후기 이후에는 전기와는 달리 유교적인 질서가 자리 잡음으로써 양반사회에서 혼인 하면 여자가 남자 집에서 사는 것으로 변했고 이를 시집간다는 표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자는 장가가고 여자는 시집간다는 표현은 지금은 결혼을 뜻하는 일반적인 표현이지만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예법을 중시했던 조선시대에는 표현에도 크게 구분을 두지 않았나 싶었다. 조선 중, 후기 이후로는 남자의 우월적인 지위를 바탕으로 여자가 시집에 살게 되는 생활 형태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2024.3)

 

 

미래를 보장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하는 책임 있는 행동이다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오래된 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