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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여행기,수필

(경주 3 ) 593 씨족 마을

(경주 3 ) 593

 

씨족 마을

 

 

처가입향(妻家入鄕)으로 맨 마지막에 들어온 경주(월성) 손씨와 여강(여주) 이씨 두 개의 성이 유교적 질서를 으뜸으로 두고, 또한 뛰어난 인재들을 배출하기 시작하면서 시가입향(媤家入鄕)으로 굳어 졌다고 한다. 두 개의 성을 중심으로 한 집성촌이 약 500 여 년 이어오고 있는 자체가 놀라운 일이고 우리나라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마을이 아닌가 싶었다. 양동 마을은 조선 시대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씨족마을의 가장 오래된 사례 중 하나라고 했다.

 

양동 마을은 씨족 마을(집성촌)인 동시에 양반세거지로서, 두 성씨의 양반가와 이들을 보필하는 노비들이 공존하는 형태였다고 한다. 기와집 아래 보이는 초가집이 그들의 주 거주지 였고 시간이 흐르면서 일부 양반들도 초가집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양동 마을을 민속마을이라고 호칭하는 경우도 있는데 엄밀하게 하면 이는 잘못된 표현이고 두 성씨의 집성촌이자 씨족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는 말이라고 보면 되지 않을까 싶다.

 

500 년의 켜가 쌓여 있는 곳을 간단히 정리하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이 정도의 지식정도는 알아두시면 좋을 듯싶다. 마을을 둘러보는데 70에 가까운 나이 지긋한 일본인이 큰 카메라를 들고 양동마을 곳곳을 두루 살피며 연신 사진을 찍고 있었다. 호기심이 들어 무슨 사진을 찍는 지 궁금해 잠시 지켜보았다. 마을 전체 풍경과 건축물 하나하나 세밀히 가능한 많이 카메라에 담으려고 했고 자신이 보기에 특이하다 느낀 것은 디테일에 좀 더 집중해서 찍고 있었다.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했고 흥미 있어 하는 표정도 엿보였다. 사진작가는 아닌 듯했고 여행자의 시각에서 우리나라 500 여 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는 마을 자체에 의미를 두고 한국 고유의 전통 마을을 자세히 살펴보고자 하는 의지가 느껴졌다.

 

500 여 년 된 문화유산인 양동 마을이 일본에 있었다고 하면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보존방식보다 훨씬 잘 관리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교토에 가면 우리가 보기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금각사를 최대한 포장하여 관리하고 있는 것과 대비 되었다. 우리나라도 2024.5.17.일을 기점으로 문화재청을 문화 유산청으로 명칭을 바꾸었는데 이를 기회로 본격적인 문화유산 보전에 힘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된 문화유산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고 문화유산은 곧 그 나라의 정체성과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본격적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방증으로 보여 졌다.

 

(2024.3)

 

 

단 한 사람을 위해서라도 인생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법정, 일기일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