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5 ) 595
관가정(觀稼亭)과 향단(香壇) 2
향단은 여강 이씨가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1540년 중종임금께서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는 회재 이언적(1491-1553)이 병환 중인 노모를 돌볼 수 있도록 지어준 집으로 명문가의 품격과 격식을 갖추어 경주(월성) 손씨의 종가인 관가정과 대비 되었지만 우열을 가릴 수는 없었다. 개인이 지은 집과 임금께서 하사한 집의 차이도 있지만 규모 면에서도 차이가 컸다.
관가정과 향단 모두 기존의 기와집과는 다른 독특한 특징을 지닌 건축물이기에 보물로 지정된 듯했다. 여강 이씨 입향조에 해당하는 회재 이언적은 12세부터 외삼촌인 손중돈의 근무지를 따라 다니면서 학문을 익혔다고 한다. 외삼촌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공부의 기초를 다지고 과거에 급제 후 한성판윤, 이조,형조,예조 판서와 경상도 관찰사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학자로서는 최고의 명예인 문묘(공자의 사당)에 모셔진 것을 보며 그의 학식과 품성 역시 대단하지 않았나 싶었다.
향기로운 집이란 뜻을 지닌 향단(香壇)이란 이름은 이언적이 경상도 관찰사를 마치고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동생인 이언괄이 형님 대신 노모를 모셨다고 하는데 이언괄의 손자인 이의주의 호를 따라 지었다고 한다. 향단 앞에 있는 설명 내용이지만 어딘지 어색했다. 내가 보기엔 이미 향단이라는 집의 당호는 있었고 이름이 좋아 손자에게 당호를 호로 대물림 해주지 않았나 싶었다. 이름 짓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 조선 시대의 특징이 여기서도 발휘되고 있었다. 향단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이곳에 하룻밤이라도 묵고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외부인에게는 다른 내부 공개를 꺼려하고 있음)
향단의 특징은 행랑채 마당까지 포함하면 마당이 세 개이고 행랑채, 안채 등을 한 구역으로 사랑채를 별도로 둔 형식을 띈 건축물이다. 안채 영역과 사랑채 영역을 구분하고 사랑채에서 마을 조망이 더 잘 보이도록하기 위해 사랑채를 높이 들어 올렸다. 사랑채도 바깥사랑채까지 별도로 두었고 마당을 별도로 두었다. 마치 사랑채가 중심 건물로 자리 잡은 느낌이 들었고 사랑채에서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단연 마을 조망에 중점은 두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행랑채 뒷마당도 넓었다. 쓰임새는 안채, 사랑채의 마당과는 다르지 않았을까 했다. 향단은 여느 집들과 달리 아주 개성 넘치는 집 구조를 지닌 건축물로 여겨졌고 한옥의 정형에서 벗어난 집이지만 현재시점에서도 나름 연구해 볼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집으로 여겨졌다. 임금께서 하사한 집이니 어찌 대충 지을 수 있었을까 했다.
(2024.3)
성공에서 핵심은 집중 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에 있다(게리켈러, 원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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